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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후불탱화 법문 2편 십대제자중 두타제일 마하가섭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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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09 11:16 조회17,4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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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도 최고 부자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마하가섭
여덟 형제의 장남이었던 사리불은 경전 속 최고의 엄친아(‘나’와 비교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존재를 뜻하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며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건련은 경전 속 최고의 효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리불과 목건련의 뒤를 이어 부처님의 제자가 된 마하가섭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한마디로 그는 경전 속 최고의 부자이자 도련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하가섭은 인도 최고 계급은 바라문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당시 인도 최고의 가문인 ‘가섭’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다. 말하자면 ‘가섭’ 가문의 종가였던 셈이다. 그래서 그의 직계가족은 ‘가섭’이라는 성 앞에 특별히 크다는 의미의 ‘마하’를 붙여 사용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하나뿐인 아들 마하가섭에게 물려주었는데 ‘마하가섭’ 가문의 재산은 마가다국 왕의 재산보다도 많았다. 마하가섭의 집은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 부근에 있었는데 그의 집안에서 직접 다스리는 마을은 500개가 넘었고, 그곳에서 수확한 곡식 등이 아닌 오로지 금전(금은보화)만을 저장해 놓은 창고가 25개나 되었다. 
마하가섭 가문의 재산은 마가다국 뿐 아니라 중인도 전체를 통틀어서 손꼽힐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명예와 부귀영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수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이 모든 재산의 소유주는 단 한 명, 마하가섭이었다.

출가 전 부처님과 꼭 닮은 삶을 살았던 마하가섭 
마하가섭의 생애는 탄생부터 부처님과 놀랄 만큼 많이 닮아있다.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세속의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 걸림이 없는 찰제리 계급의 왕자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했던 것처럼 마하가섭 역시 세속의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 걸림 없는 신분과 인연을 선택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다. 두 분의 공통점은 자신을 지극히 애지중지하는 부모를 만났다는 것이다.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부모는 늦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다가 뒤늦게 아들을 낳아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귀하게 키웠다. 또한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이 산달이 가까워오자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의 아소카(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부처님을 낳은 것처럼 마하가섭의 어머니도 산달이 가까워올 무렵 정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진통을 느껴 핍팔리(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마하가섭을 낳았다. 그때 마하가섭의 어머니가 진통이 심해 미리 마련한 산실까지 걸음을 옮길 수가 없어 핍팔리 나무 아래 앉자 하늘에서 하얀 천이 내려와 산실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두 분의 또 다른 공통점은 출가 전 부모님의 강요로 결혼을 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혼에 대처한 방식이나 결혼 생활에 임한 자세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바라본 ‘부처님’과 ‘마하가섭’이라는 신화적인 존재들조차 부부의 인연이나 문제만큼은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에서 부부의 일은 역시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 남자
성인(聖人)이 될 인연이 무르익어 세상에 나온 마하가섭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미 출가를 향한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기 전 그가 스스로 선택한 속세의 삶은 그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놓아주지 않았다. 부처님 역시 부처가 되고자 세상에 나왔으나 부처가 되기 전 먼저 스스로 선택한 속세의 삶을 온전히 살아야 했기에 ‘왕자’로써 29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에 비로소 출가를 하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카필라국의 왕자 싯다르타’라는 세속의 몸을 선택한 이상 그것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중인도 최고 부자에 바라문 ‘가섭’ 가문의 종성이라는 세속의 몸으로 태어난 이상 마하가섭 역시 온전히 살아야 하는 삶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로써의 마하가섭은 부처님보다 저항정신이 훨씬 뛰어났다. 뒤늦게 아들을 얻은 마하가섭의 부모는 그가 성년이 되자 결혼을 서둘렀다. 하루 빨리 손자를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하가섭이 바라문 계를 수계한 8살 이후로 4가지 베다와 그림, 글씨, 산수, 웅변, 무술, 천문학 등 세상에서 배워야할 일체의 모든 지식과 제사법을 빠짐없이 가르쳤다. 그리고 가르치는 대로 흡수하는 놀라운 지식과 지혜를 지닌 아들에게 감탄하였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아들이 자손을 남기길 바랐다. 
하지만 원래부터 남녀의 애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마하가섭은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강요를 피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조건을 걸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완벽한 여인을 실물크기의 황금으로 빚은 뒤, 이 황금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이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발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 역시 마하가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인도 최고의 부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감히 결혼을 피하기 위해 실물크기의 여인을 순금으로 조각할 수 있겠는가. 
최고의 공예사가 빚어낸 황금조각상의 여인은 실로 인간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마하가섭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다소 과소평가했다. 황금조각상을 본 마하가섭의 부모는 조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아들의 배필로 맺어주기 위해 인도 전역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비사리에서 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발견했다.

마하가섭의 천생연분, 밧다카필라니
마하가섭의 부모는 아들의 이상형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찾기 위해 인도 전역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맛다국 사갈라에서 바라문 꼬시야 장자의 아름다운 딸 밧다카필라니를 찾아냈다.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의 부모는 기뻐하며 두 사람의 결혼을 추진했다. 모두가 축복하는 이 결혼을 마땅치 않아하는 사람은 당사자인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 뿐이었다. 사실 밧다카필라니 역시 마하가섭과 마찬가지로 결혼보다는 출가하여 수행하는 삶을 꿈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도 사회에서 여자의 몸으로 더군다나 고귀한 바라문 출신의 여인이 출가수행을 한다는 것은 그때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부모님을 설득할 명분도, 결혼을 거부할 명분도 없게 된 두 사람은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설에 따르면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혼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결혼식 전날 각자의 하인에게 자신이 결혼보다는 수행에 더 뜻이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편지를 전하러 가던 길에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하인은 자신의 주인들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편지를 전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의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청정함을 지킨 고귀한 결혼생활
첫날 밤, 아름답게 꾸며진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의 침실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손 하나 닿지 않은 채 마주 앉아 밤을 새운 두 사람은 동틀 무렵 서로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세속적인 부부의 삶이 아니라 수행을 원하는 마음이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순식간에 깊은 동지애를 느꼈다. 과연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최고의 천생연분을 찾아 준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에게 결혼생활은 더 이상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두 사람의 사이가 다정하자 마하가섭의 부모는 안심을 했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손자와 손녀를 보고 싶어 하는 그들이 아직 모르는 것이 있었다. 겉으로는 부부로 지내되 서로의 수행을 방해하지 말고 돕자는 약속을 한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는 부모님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같은 방을 쓰지만 서로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자며 정결함을 지켰던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마하가섭의 부모는 아들과 며느리의 방에 들어와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은 후 침대 하나를 아예 부셔버렸다. 그러자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는 서로 자는 시간을 정해놓고 침대를 사용하였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침대 가운데 꽃다발을 놓고 잠을 잤다. 이 꽃다발은 12년 후 마하가섭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하가섭이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출가 대신 결혼을 강요받은 것은 부처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출가를 결심했던 부처님은 아버지 정반왕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했으며 9년 만에 아들 라훌라를 얻었고 라훌라의 탄생은 부처님이 다시금 출가의 의지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마하가섭의 출가는 부처님보다 늦긴 했지만 12년 동안 한 결 같이 청정함을 지켰던 밧다카필라니와의 부부생활은 그 자체로 고귀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가, 재산을 정리하고 집을 떠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른 후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는 재산을 처분하여 집안의 하인과 노예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부모님이 계실 때에도 언제나 출가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온 마하가섭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일족의 가장이며 지역의 지도자였다. 따라서 그 많은 재산과 마을 그리고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마하가섭이 출가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평소 그가 돌보아주었던 버려진 노인들은 이제 자신들을 버리는 것이냐며 슬퍼했다. 이에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는 출가로 인해 불쌍한 이들이 다시 헐벗고 굶주리는 생활을 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이처럼 마하가섭은 실로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타고난 리더이자 탁월한 지도자였다. 이러한 행동은 훗날 마하가섭의 고향마을 전체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교단을 철저하게 지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500명의 장로가 모인 제1결집은 마하가섭의 고향 부근에 있는 기사굴산에서 이루어졌다. 500명의 장로들이 밤낮으로 토론을 거듭하는 동안 그들을 공양 보필했던 이들 역시 마하가섭에게 은덕을 입었던 고향마을 사람들이었다. 마침내 모든 정리를 마친 마하가섭과 밧다카필라니는 서로 머리를 깎아주었다. 그리고 함께 집을 떠났다.

밧다카필라니와의 이별과 부처님과의 만남
한참을 같이 걷던 이들은 갈림길에 도착하자 출가 전 부부였던 두 사람이 출가 후에도 함께하는 것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헤어졌다. 하지만 영원한 이별은 아니었다. 출가 전에도 좋은 도반이었던 이들은 누구든 먼저 스승을 만난다면 서로에게 가르쳐주기로 약속을 했다. 혼자가 된 마하가섭은 계속 길을 걸었다. 바로 그때 사리불과 목건련을 상수제자로 맞아 죽림정사에서 교단을 이끌고 계시던 부처님은 천안(天眼)으로 마하가섭이 마침내 집을 떠났음 보셨다. 그리고 이 특별한 남자를 제자로 맞이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몰래 길을 나섰다. 평생을 길 위에서 살아가며 수 천 명의 제자를 받아들이고 가르치신 부처님이지만 이처럼 자신이 직접 마중하여 맞이한 제자는 마하가섭이 유일무이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하가섭은 나무 아래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부처님을 만났다.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전해줄 제자를 기다려온 스승과 자신을 깨우쳐줄 스승을 간절히 찾아온 제자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았고 마하가섭은 자신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부처님에게 다가가 부처님의 두 발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당신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부처님이 대답하셨다.

“가까이 오라, 그대를 기다렸다. 아는 척 하거나 본 척 하는 거짓된 사람이 그대처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예배를 받는다면 그의 머리는 일곱 조각으로 깨어질 것이다. 나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보지 못했으면서 본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아라, 그대의 예배를 받고도 터럭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았기에 알고 본다고 말하는 나는 그대의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다.”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만남과 두 사람이 첫 만남에서 나눈 대화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실제로 마하가섭과 부처님은 평생에 걸쳐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법을 마음과 미소로 나누었는데 그러한 전통은 바로 이 만남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피와 칼로 얻는 자리, 제왕의 후계자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자식 문제로 속이 썩지 않은 제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시절이 무르익으면 한 번쯤은 강력한 왕이 등장한다. 그 위대한 왕은 정복전쟁 등을 통해 백성들의 정신력을 고취시키고 영토를 확장하여 생활을 안정시킨다. 그렇게 통치 기반이 안정되고 나면 곧바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후계자 문제이다. 
역대 모든 왕조는 항상 정복 전쟁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후계자 전쟁을 치러왔다. 수 백 년에 걸친 춘추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도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웠지만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멸망했다. 진나라의 뒤를 이어 천하를 이어받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 역시 고생을 함께해온 조강지처의 아들과 사랑하는 비빈의 아들을 놓고 후계를 제때 결정하지 못해 사후 수많은 피바람을 일으켰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역시 천륜을 거스르고 왕위에 오른 아들 이방원과 평생 반목했지만 태종 이방원 역시 적장자가 아닌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부처님이 활동하셨던 시기의 인도 역시 나라마다 후계자가 늘 문제였다. 부처님은 살아서 자신이 태어난 카필라국이 북인도의 강대국 코살라국에 의해 멸망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본디 코살라국의 파제나짓 왕은 불법에 귀의한 부처님의 제자이자 후원자였다. 파제나짓 왕의 태자는 수닷타 장자가 불교사원 기원정사를 짓도록 정원을 팔고 사원에 필요한 나무를 기증한 ‘기타’였다. 하지만 뒤늦게 카필라국 출신의 말리카 왕비에게 얻은 왕자 유리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기는 몸이 되었다. 아버지를 내쫓은 왕자 유리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오만한 눈으로 자신을 비천한 출신이라고 조롱했던 카필라국을 멸망시켰다.
부처님의 기둥 같은 상수제자 사리불과 목건련 그리고 마하가섭의 나라인 마가다국 역시 후계자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부터 인연이 깊어 마침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를 보시한 인물이다. 빔비사라왕에게는 ‘이바다’라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태자가 있었다. 이바다는 빔비사라왕과 부처님의 주치의의 지바카의 양아버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바다는 불법에 귀의하여 출가하였다. 빔비사라왕은 태자의 출가를 기쁘게 축복했으나 후계자를 다시 세워야 했다. 나이가 든 왕은 자신이 더 늙기 전에 태자가 될 귀한 아들을 하루 빨리 다시 얻기를 소원했다. 
왕은 가장 뛰어난 바라문 사제들과 점술가들을 동원하여 언제쯤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물었다. 바라문 사제들과 점술가들은 마침내 설산의 수행자가 3년 후 정해진 수명이 다하여 세상을 떠나면 그가 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내어 왕에게 전했다. 3년 후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왕은 조급한 마음에 군사를 시켜 비밀리에 수행자를 죽인다. 수행자는 죽기 전, 자신의 살해를 명령한 사람이 왕이라는 것을 알고 지독한 원한의 마음을 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열 달 후, 빔비사라 왕이 사랑하는 베데히 왕비가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아자타삿투르 태자다. 
자신이 명령한 것이긴 하지만 설산 수행자의 죽음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빔비사라왕은 처음에 태자를 멀리했으나 이내 흠뻑 사랑을 쏟게 되었다. 하지만 자라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아자타삿투르 태자는 빔비사라 왕을 감옥에 가두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빔비사라왕은 감옥에 갇혀 굶주림 끝에 쇄약해진 몸으로 죽음을 맞는다. 
카필라국과 마가다국은 부처님이 살아계시던 당시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고 파제나짓 왕과 빔비사라 왕 역시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였다. 또한 그들은 부처님의 제자이자 열렬한 수호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후계자 문제로부터 온전하게 자유롭지 못했고 끝내는 자신의 아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미소와 마음으로 얻는 자리, 부처님의 후계자
제왕의 후계자 자리가 피와 칼로 얻어지는 것과 반대로 부처님의 후계자 자리는 미소와 마음으로 전해졌다. 또한 세속을 떠난 부처님은 당신의 친아들 라후라에게 그 어떤 물질적인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고 교단의 지위는 더더욱 물려주지 않았다. 라후라 역시 훗날 십대제자의 반열에 오르지만 교단을 물려받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은 것은 마하가섭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하가섭을 1대 조사로 여긴다. 
부처님이 마하가섭을 맞이하러 나가셨을 당시 교단이 위치한 죽림정사에는 1,250여 명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최초의 제자인 녹야원의 다섯 비구를 비롯하여 1,000명의 제자들과 함께 귀의한 가섭 삼형제 그리고 200명의 제자들과 함께 귀의한 상수제자 사리불과 목건련이 바로 그들이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바라문 교의 핵심 사상인 사성제 타파 즉, 계급에 따른 차별에 대하여 반대하였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단체생활에는 질서가 필수였다. 더구나 천 명이 없는 남자들만 모여 살아가는데 발생하는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서열과 규칙이 있어야만 했다. 
부처님은 사리불과 목건련 두 상수제자에게 이것을 일임하셨다. 먼저 제자가 된 비구들 중에는 나중에 부처님께 귀의한 사리불과 목건련이 상수제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사리불과 목건련은 지혜를 바탕에 둔 탁월한 운영능력으로 차곡차곡 교단의 기틀을 잡아갔다. 부처님은 마하가섭을 맞으러 몰래 죽림정사를 빠져나간 것은 사리불과 목건련에 의해 교단이 안정되어 갈 무렵이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를 떠나 마하가섭과 단 둘이서 보낸 시간은 8일이었다. 부처님이 안 계신 이 8일 동안 사리불과 목건련은 교단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가며 상수제자로써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아사지 비구로부터 불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뒤, 부처님께 귀의하기 위해 자신의 스승을 떠나 죽림정사로 와 상수제자가 된 것은 드라마틱 그 자체이다. 하지만 부처님이 직접 맞이하러 갔던 마하가섭에 비하면 사리불과 목건련의 이야기는 평범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삼매에 들어 천안으로 마하가섭이 참된 스승을 찾아 헤매고 있음을 알게 된 부처님은 직접 마하가섭을 만나러 간다. 이미 그가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알고 계셨던 부처님은 마하가섭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첫 만남은 아름다우면서도 비밀스러운데 그 이유는 부처님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마하가섭을 만나러 오셨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32개의 성스러운 상호를 드러내고 앉아계신 부처님을 본 마하가섭은 그 즉시 부처님이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스승임을 알고 예를 다하여 제자가 되기를 청한다. 마하가섭만큼이나 이 시간을 기다려왔던 부처님은 마하가섭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이다. 부처님은 마하가섭과 함께 곧바로 죽림정사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와 단 둘이 8일간의 시간을 보낸다. 이 8일 동안 부처님은 마하가섭에게 불법의 진리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고 이 가르침을 통해 마하가섭은 부처님이 깨달은 모든 진리를 터득하고 수행자의 최고지위인 아라한과를 얻는다. 죽림정사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제자들보다 자신의 뒤를 이을 마하가섭이 한시라도 빨리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부처님은 아라한과를 성취한 마하가섭을 다른 제자들에게 당당하게 소개하기 위해 일부러 은밀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마하가섭과 부처님이 함께 보낸 이 특별한 시간 동안 또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마하가섭과 부처님이 서로의 가사를 교환한 것이다. 어느 날 부처님이 가르침을 마치고 선정에 들려고 하자 마하가섭은 얼른 자신의 가사를 접어 부처님이 앉으실 자리를 만들었다. 이에 웃으며 마하가섭이 만든 자리 위에 앉은 부처님이 가사의 부드러움을 칭찬하시자 마하가섭은 즉시 자신의 가사를 부처님께 공양했다. 그리고 자신은 부처님께서 입고 계신 분소의(버려진 천을 모아서 기워 만든 가사)를 내려주실 것을 청했다. 부처님은 자신의 누더기 가사를 벗어 마하가섭에게 내려주셨다. 
부처님의 분소의를 물려받은 마하가섭은 부처님과 함께 교단으로 갔다. 8일 만에 죽림정사로 돌아오신 부처님을 보며 공경의 예를 다하던 제자들은 부처님의 분소의를 입은 마하가섭을 보며 깜짝 놀랐다. 부처님을 마중 온 사리불과 목건련은 마하가섭을 향해 의발제자에 대한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사리불과 목건련의 행동을 본 제자들은 마하가섭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 후 지금까지도 교단에서 스승이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에게 가사를 물려주는 것은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은 일생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세 명만 만나도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굳이 성공한 인생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진정 어렵다. 일단 내가 내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 쉽고, 그러다 보니 평생을 함께 산 배우자도, 열 달 동안 나를 뱃속에 품었던 자식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단 일생 동안 단 한 명이 세 번에 걸쳐서 나를 알아보아 준다면 그 감동은 과연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마하가섭과 부처님은 일생에 거쳐 세 번 동안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고 두 사람의 인연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염화미소, 꽃을 든 부처와 미소 짓는 가섭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을 담은 이 고사성어는 부처님과 마하가섭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사부대중을 앞에 두고 설법을 하실 때였다. 하늘에서 천신들이 여러 가지 만다라 꽃을 뿌려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축복하며 칭송했다. 그때 문득 부처님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셨다. 그러자 대중들은 영문을 몰라 부처님과 부처님 손에 들린 연꽃을 마냥 바라보면서 부처님이 어떤 말씀을 해주시기를 기다렸다. 그때 그 모습을 본 마하가섭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마하가섭의 미소를 본 부처님은 드디어 입을 열어 대중 앞에서 말씀하셨다.

“여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이는 부처님께서 사부대중과 천신 앞에서 마하가섭을 자신의 후계자로 정한 사건이었다.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은 부처님께서 체득한 매우 깊은 불가사의한 진리이며, 현묘한 깨달음으로 말이나 문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의 불법이다. 이에 사부대중들은 부처님과 마하가섭이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높고도 어려운 경계에서 서로 통했음을 알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또한 지금까지도 ‘가섭의 미소’는 선종에서 전해지는 최초의 화두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염화미소(拈華微笑)에 대한 내용은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전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조금 더 친근한 경전 역시 ‘염화미소’의 배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로 묘법연화경, 법화경이다. 영축산은 히말라야 산이고, 사부대중은 출가제자인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재가 제자인 우바새와 우바이를 뜻한다. 8 4천자의 법문을 남기신 부처님은 법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내용을 기원정사에서 설하셨다. 따라서 사부대중이 모두 모인 상황에서 야외 설법을 했던 것은 손에 꼽힌다. 또한 부처님이 설법을 하기 전 하늘로부터 온갖 만다라 꽃이 비가 오는 것처럼 쏟아졌다는 내용 역시 법화경에도 나와 있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다자탑 반분좌, 하나의 자리를 둘로 나눠 앉은 부처와 가섭
다자탑 앞에서 부처님이 자신의 자리 반을 내주며 마하가섭에게 진심을 내보이셨다는 ‘다자탑전반분좌(多子塔前半分座)’의 일화 역시 천신과 사부대중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였다. 마하가섭은 부처님께 귀의한 이후에도 교단에서 단체생활을 하기보다는 홀로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것을 즐겼다. 부처님은 마하가섭의 행동을 널리 이해하고 허락해주셨다. 의지가 약한 수행자들에게 도반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누구보다 잘 가르쳐주셨던 부처님이시지만 이미 온전한 수행자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줄도 알아야 했다. 특히 사원에서 생활하는 편안함을 멀리하고 두타수행을 하는 마하가섭 행동은 교단이 번창하면서 잃기 쉬운 청정함의 정신을 유지하는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어느 때에 부처님은 천신과 사부대중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설법을 하게 되었는데 문득 자리에 없는 마하가섭이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두타수행 중이던 마하가섭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스승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하가섭이 도착하자 그곳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단장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누더기를 입고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 거지가 갑자기 나타나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가 부처님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길을 막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손을 들어 행동을 저지한 후 거지를 향해 손짓을 했다. 거지는 부처님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서 오체투지의 예를 갖추며 말했다.

“거룩하신 부처님, 당신의 나의 스승이십니다. 제자 가섭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잘 왔다. 나의 큰 제자 마하가섭이여.

그리고는 마치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듯,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앉아 계시던 자리의 반을 내주셨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가 ‘두타제일(頭陀第一)’로 이름 높은 마하가섭임을 알게 되었다. 이어서 부처님은 대중들이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 않고 홀로 수행을 하며 생활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도록 덧붙여 말씀하셨다.

“마하가섭은 광대무변한 위엄과 덕을 갖추었으며 나와 비슷한 수도의 과정을 거쳐 혼자서라도 충분히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느니라.

니련선하 곽씨쌍부, 관 안에서 두 발을 내보이다
부처님이 마하가섭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을 보이신 것은 열반하신 후이다. 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 마하가섭은 500명의 제자들과 함께 이웃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마하가섭은 제자들을 이끌기보다 홀로 두타수행을 하는 것을 즐겼으나 그때는 사리불과 목건련이 반열반에 들었기 때문에 몸소 제자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부처님의 반열반 소식을 듣게 된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어 쿠시나가라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이미 부처님은 관 안에 계시고 아난존자가 한창 불을 붙이려고 하고 있었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반열반을 지키고 장례를 치른 아난존자에게 간청했다.

“아난이여,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게 해 주시오.

하지만 아난존자는 이미 다비식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마하가섭은 아난존자에게 두 번을 더 청했으나 아난존자는 두 번 모두 거절하였다. 하는 수 없이 마하가섭은 통곡하며 부처님의 관 주위를 돌았다. 그러자 부처님의 두 발이 갑자기 관 밖으로 나왔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자비로우신 부처님이시여, 위대한 스승이시여, 안심하십시오. 저희들이 비록 눈 어둡고 어리석기는 합니다만 기어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른 법을 널리 펴서 모든 중생이 복을 누리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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