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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후불탱화 법문 3편 십대제자중 다문제일 아난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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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09 11:29 조회11,2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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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열성팬과 안티팬을 거느린 선각자
부처님은 혈연과 지연으로 대물림되는 특혜를 타파하고 귀천의 기준은 어떻게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보여주듯 스스로 왕가에서 태어나 태자의 지위와 아름다운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출가 이후 부처님은 고요하게 고행을 했고 깨달음 이후 상생과 화합의 중요함을 강조한 설법과 포교는 항상 평화적이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잠들어있던 자존감을 깨웠고 이는 동시에 사회적인 혁명을 야기했다. 이러한 부처님의 존재는 조용했지만 그 자체로 파격이었고 부처님의 말씀은 평온하면서도 세상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할 정도로 위험했다. 그래서 열성팬도 많았지만 안티팬도 많았다. 이는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수성가 그리고 금의환향 
아무리 비범함을 타고난 인물이라도 충성도가 강한 팬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의 가치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를 보여주듯 부처님은 안정적인 성공이 보장된 혈연과 지연을 떠나 고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중인도 최대 국가인 마다가국에서 불을 섬기는 외도 가섭 3형제와 그들의 제자 천 명을 단번에 불법에 귀의시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또한 빔비사라왕을 만나 우정을 쌓았고 왕으로부터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를 기증받아 천 명이 넘는 제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수행생활을 하며 교단의 모습을 갖추었다. 
부처님의 이름과 교단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할 무렵 명망 높은 산자야의 뛰어난 제자 사리불과 목건련을 상수제자로 맞아 교단의 체계를 정립하고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 그 후 중인도 최고의 명문 가섭 가문의 후계자 마하가섭을 의발제자로 삼아 후대를 견고히 하였으니 이 자체로도 충분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성공행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법에 귀의한 수닷타 장자는 기타 태자의 정원을 구입하여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함께 수행을 할 수 있는 기원정사를 지었다. 기원정사가 완성되던 날 부처님은 북인도 최고의 강대국이자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국의 종주국인 코살라국으로 화려하게 입성한다.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엄청난 자수성가였다. 국내가 아닌 해외진출의 성공이 스타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는 공식은 부처님에게도 적중했다. 부처님은 고향 밖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둔 후에야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갔다. 수행자이기에 부처님과 그 제자들 모두 겉모습은 맨발에 분소의만 걸쳤지만 진정한 금의환향이었다. 부처님의 고향에서 불법에 귀의하여 출가한 인물 중에서 무려 4명의 십대제자가 나온다. 재미있게도 석가족의 이발을 담당했던 우바리를 제외한 3명은 모두 부처님의 친인척이었다.

아난, 환희의 이름으로 태어난 왕자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이 궁을 떠나 출가한 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끊임없이 사람을 보내 부처님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아오도록 시켰다. 뼈와 가죽만 남아 간신히 목숨만 지탱했던 6년 동안의 고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정반왕은 사자가 돌아올 때마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물었다.

“내 아들이 도를 얻었는가? 아니면 병이 나거나 죽었는가?”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부처님은 진정한 깨달음은 고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고행을 끝냈다. 고행을 버린 부처님은 강물에 목욕을 하고 수자타가 올린 우유죽 한 그릇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 앉아 선정에 든 지 7일 만에 마왕의 유혹을 물리치고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의 축복이었지만 온갖 유혹으로 부처님을 방해했으나 끝내 패배한 마왕은 극심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마왕은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신과 인간의 스승이 된 부처님에게 감히 대적할 수 없자 그 아버지를 괴롭히기로 결심하고 오매불망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정반왕에게 가서 속삭였다.

“그대의 아들은 오늘 저녁에 이미 죽었다.”

이 말을 들은 정반왕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두려움에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통곡을 했다. 바로 그때 부처님이 깨닫는 동안 그늘을 제공했던 보리수의 신이 하늘의 꽃 만다라를 가지고 정반왕에게 와서 기뻐하며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했음을 말해 주었다. 자신의 아들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하늘과 신과 인간의 스승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반왕은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곡반왕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정반왕은 그 자리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오늘은 대단히 상서롭고 기쁜 날이니 그 아기는 꼭 아난다(Ananda ; 기쁨, 환희)라고 부르게 하라.”

그림자처럼 조용히 부처님을 시봉하며 부처님의 설법듣기를 가장 좋아하였고 한 번 들은 설법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던 시봉제일, 다문제일의 십대제자 아난(阿難)의 탄생이었다.

미모제일 아난, 교단을 대표하는 뛰어난 공식 꽃미남
부처님은 인간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는 32상을 갖춘 분이시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도 발군이었다. 자비로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오묘하고도 수려한 이목구비며 마르지도 살찌지도 않은 몸매에 결가부좌를 능히 할 수 있을 만큼 긴 다리까지 황금비율의 신체조건을 갖추셨다. 또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손수 기워 만든 분소의 하나만 걸치고도 자체발광의 스타일과 미모를 뽐내시지 않았던가. 실로 부처님의 외모에 끌려서 불제자가 된 이들도 많았다. 아난 역시 부처님의 모습과 음성에 이끌려 출가를 결심하였는데 출가 당시 아난의 나이는 고작 여섯 살로 조카인 라훌라보다도 훨씬 어렸다. 또한 실제로 부처님과 사촌지간이었던 아난은 부처님과 가장 닮은 얼굴이었다고 한다. 
갓 태어났을 때조차 하도 단정하고 아름다워 보는 이들이 저절로 기쁜 마음을 냈던 아난의 미모는 출가 후 교단에서 성장하면서 더욱 빛이 났다. 일찌감치 부처님의 그늘 아래서 살기를 희망하며 항상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고충을 겪기도 했다. 왜냐하면 여자들의 경우 아난을 보면 곧바로 욕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의 아름다움이 자칫 여인으로 인하여 화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셨고 성년이 된 아난을 시봉으로 삼았다. 그리고 오직 아난에게만 유독 양쪽 어깨를 덮는 옷을 입을 것을 허락하여 세속 여인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노출을 자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아난의 미모는 가릴수록 더욱 빛났고 세속의 재가자와 출가자 모두를 매혹시켰고 아난의 미모를 대놓고 찬탄한 게송까지 등장하였다.

얼굴은 맑은 보름달 같고
눈은 푸른 연꽃 같은데
불법의 큰 바닷물이
아난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갔도다.

사람들의 마음과 눈으로 하여금
보기만 하면 크게 환희하게 하고
부처님을 뵈러 온 이들
잘 인도하여 화목함을 잃지 않네.

아난의 여난(女難) 1
찹쌀떡 스캔들

세속에서의 삶이 6년 밖에 되지 않았던 아난은 세속에 대하여 가장 미숙하였고 동시에 세속으로부터 가장 많은 유혹을 받은 인물이었다. 특히 그를 깊이 연모한 여인들과의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남녀의 감정과 세속의 문제에 워낙 미숙하여 당찬 대응을 하지 못한 부분도 있거니와 아난의 미모가 출중할뿐더러 마음이 여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찹쌀떡 스캔들이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사위성의 어떤 한 부자가 찹쌀떡을 빚어서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 모든 스님들이 충분히 공양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찹쌀떡이 넉넉하여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시켜 성중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찹쌀떡을 골고루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아난은 찹쌀떡을 가져가라며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아난은 손수 찹쌀떡을 하나씩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홀로 정신없이 찹쌀떡을 나누어주던 어느 순간 아난은 문득 한 사람에게 찹쌀떡을 2개를 주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큰 소란이 났다. 사실 이는 우연한 일로 작은 실수에 불과할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무상으로 찹쌀떡을 나누어주다가 일어난 일이기에 굳이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다만 아난이 찹쌀떡 2개를 준 이가 비록 가난하여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긴 하지만 미색이 빼어난 소녀였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이었다. 아난의 실수를 문제 삼은 이들은 물론 여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아난이 혹시 그 소녀를 마음에 두고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여 소란을 피운 것이었다. 
찹쌀떡을 나눠주던 아난은 갑자기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방에 어쩔 줄을 몰랐다. 아난이 당황하자 소란은 점점 커졌고 마침내 부처님이 직접 사건을 수습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로 부처님 앞에서 해명을 해야 하는 아난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부처님은 아난을 비방한 사람들과 아난의 행동을 지켜보았다며 그들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난이 소녀에게 찹쌀떡을 하나 더 주게 된 연유는 모두 전생의 인연에 의한 것이라는 법문을 설하시고 아난의 행동이 결코 고의가 아님을 증명해 주셨다. 부처님의 해명 아닌 해명을 들을 후에야 사람들은 겨우 안심 혹은 납득을 하고 흩어졌다. 
사태가 수습이 되었으나 아난은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처님 역시 아난에게 유독 잦은 여인들과의 문제가 고의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에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아난에게 누차 여인을 대할 때 순수하고 올바른 마음이어야 하며 나이가 어린 여인은 누이로, 나이가 많은 여인은 어머니처럼 대할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출가자로써 사소한 일이라도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항상 정신을 가다듬을 것과 특히 여인으로 인해 비난 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셨다. 하지만 아난의 행동은 항상 모든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고 특히 그를 사모하는 여인들은 언제나 매의 눈으로 그를 주목하며 작은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인과 관련된 일들은 아주 작은 문제라 할지라도 피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스캔들이 크게 터지고야 말았다.

아난의 여난(女難) 2
마등가 여인과의 스캔들

아난은 일생에 걸쳐 여인으로 인해 몇 번의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마등가 여인과의 스캔들은 그의 수행자 생활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마등가(摩登伽)’ 이름이 아니라 주술과 점술을 업으로 삼는 최하층 신분을 지칭하는 말로 이들은 인간을 4가지 계급으로 나눈 4성 제도에서 최하위에 속하는 수타라보다 더 낮은 전타라에 속했다. 전타라는 옥졸, 도살, 고기잡이 등에 종사하는 이들로 가장 천한 종족으로 옛날 우리나라에서 ‘도살’에 종사하는 이들을 ‘백정’이라 부르며 천시하던 정서와 비슷하였다. 
아난과 마등가 여인의 만남은 사실 별다를 것이 없었다. 어느 날 홀로 사위성에서 걸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난은 문득 갈증을 느꼈고 전타라 신분의 여인에게 물을 청하였다. 이에 여인은 천한 신분을 지닌 자신은 고귀한 수행자의 부탁을 받는 것이 폐가 된다며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아난은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인이여, 사문으로 불리는 이들은 마음이 평등하여 귀하거나 천한 사람들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단지 베풂을 받고자 하니, 오래 머물지 않겠습니다.”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출가한 후 신분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계급은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수지했던 아난은 신분이 낮음을 염려하는 여인에게 오직 마음에 귀천이 있을 뿐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불법의 가르침을 전파한 것이었다. 자애로운 목소리로 거듭 물을 청하는 아름다운 아난의 얼굴을 마주한 여인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고 그 순간 여인의 마음에는 강렬한 사랑이 싹텄다. 하지만 아무런 사심이 없던 아난은 물을 마신 후 머물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아난이 사라진 후에도 여인은 그의 수려한 외모, 다정다감한 목소리, 우아한 말투, 고상한 몸가짐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고 마침내 그와 반드시 결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만약 아난이 여인 신분을 이유로 물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을 때 바로 자리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물을 청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난은 왜 굳이 마등가 여인에게 신분의 평등함을 설파하면서까지 물을 거듭 청하여 이런 사태를 만들었을까. 바로 이러한 부분이야말로 아난의 장점이자 단점이며 곧 매력이기도 했다. 타고난 비주얼의 우월함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남녀노소를 불분하고 그 대상이 천한 신분과 세속의 욕망을 지닌 젊은 여인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바른 불법을 설파하는 것이 아난에게는 곧 사명이자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다만 누구나 아난과 같이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기에 매번 설마하며 우려하던 문제가 발생하곤 했던 것이다.

마등가 여인의 마음에 뿌리내린 강력한 애욕의 씨앗
아난과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온 마등가 여인은 상사병을 앓기 시작했다.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수척하게 말라가는 딸을 보는 어머니는 애가 타 연유를 물었다. 여인은 괴로운 얼굴로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말한 후 아난존자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였다. 딸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깜짝 놀라 딸을 다그쳤으나 여인은 절망한 얼굴로 만약 아난존자를 남편으로 맞지 못한다면 세상을 살기 싫다며 어머니를 협박을 하였다. 주술사였던 어머니는 자신의 능력이 부처님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행여 하나뿐인 딸을 잃을까 두려워 아난존자를 딸의 짝으로 만들기 위해 치밀한 계략을 짰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딸을 눈앞에 둔 어머니는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이성을 마비시키는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주문은 아난의 정신을 미혹시켰고 아난은 자신도 모르게 기원정사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돌려 여인의 집을 향하였다. 멀리서 아난이 걸어오는 모습을 확인한 여인의 어머니는 주술이 성공했음을 알고 딸에게 얼른 온몸을 치장하고 꽃과 향으로 집안을 단장하라고 시켰다. 한편 혼미한 정신으로 여인의 집에 도착한 아난은 노골적으로 몸을 드러낸 채 한껏 치장한 젊은 여인이 자신을 맞이하자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손길은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고 아난은 어찌할 줄을 모른 채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오열하였다.

“나는 어찌 이리도 가호를 받지 못해 이런 고난을 만나게 되었을까. 대자대비한 세존께서는 어찌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위호(威護)하는 마음을 내어 괴로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지 않을까.”

만약 사리불이었다면 의연하게 출가사문의 계율을 말하며 지혜롭게 자리를 피했을 것이고 목건련이었다면 신통력으로 그들을 혼내주었을지도 모른다. 칼 같은 성격의 마하가섭이었다면 감히 그들은 주술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난은 몸은 이미 유혹을 당해 마등가 여인 곁에 있으면서 눈물 젖은 얼굴로 무력하게 울먹이며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멀리 계신 부처님의 위신력을 구할 뿐이었다.

부처님을 시봉한 아난과 아난을 보살핀 부처님
아난이 타고난 최고의 복은 늘 부처님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선근과 지혜가 뛰어난 아난이 혹시라도 세속에 미혹될 것을 염려하여 늘 아난을 보살폈다. 부처님의 친아들 라훌라조차도 이처럼 부처님 가까이에서 지내며 살뜰한 보살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수많은 제자들을 뒤로하고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아난을 시자로 삼았던 이유도 장차 아난에게 닥칠 유혹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부처님이 아난을 보살핀 마음은 아난이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을 시봉했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마등가 여인의 유혹에 빠진 아난이 울면서 온 마음을 다해 부처님을 불렀을 때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은 아난을 보호하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부처님의 위신력에 아난의 선근이 더해지자 강력했던 주술이 풀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몸과 마음을 추스른 아난은 곧바로 여인의 집에서 나와 눈물 젖은 얼굴로 기원정사로 돌아갔다.

마등가 여인의 공개구혼과 부처님의 독설
그 후 마등가 여인은 아난을 감히 직접 유혹하지는 못하였으나 그가 탁발을 하기 위해 사원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쫓아다녔다. 마등가 여인의 구애는 조용했으나 점점 집요해졌고 점차 여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자 아난은 마음이 몹시 심란하여 수행조차 할 수 없는 매우 곤란한 지경이 되었다. 결국 마등가 여인은 부처님 앞에 불려갔다. 그곳에서 여인은 아난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고백을 받은 아난은 창피하고 곤란하여 어쩔 줄을 몰랐으나 여인은 오히려 당당했다. 천민 여인의 공개 구혼에 사람들은 놀랐으나 부처님은 동요하지 않으신 채 여인에게 담담히 물었다.

“그대는 아난존자의 어디가 그토록 좋은가?”

“저는 아난존자의 눈도 좋고 코도 좋고 입도 좋고 귀도 좋다 모두가 다 좋습니다.”

여인의 대답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희대의 독설로 답하셨다.

“눈에는 눈곱이 있고 코에는 콧물이 있고 입에는 침이 있고 귀에는 귀지가 있고 몸에는 피고름이 흐르는데 그것이 좋단 말인가?”

수많은 제자들과 대중들이 앞에서 스캔들의 당사자인 아난을 앞에 세워놓고 그의 미모가 사실은 아무런 실체가 없음을 가차 없이 밝히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아난에게 깊이 빠진 여인에게는 부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에 부처님은 그토록 아난을 원한다면 먼저 몇 가지 조건을 따라야만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여인은 아난과 결혼하기 위해 두말없이 부처님이 제시한 조건을 따를 것을 맹세하였다. 부처님이 결혼을 하려면 먼저 출가하여 교단의 규칙에 맞게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마등가 여인은 기꺼이 출가를 하였고 열심히 수행을 하였다. 그러던 중 불법의 참 뜻을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수행자가 된 여인은 더 이상 아난과 결혼에 집착하지 않았다. 출가한 후 여인은 이미 달라졌지만 여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마등가 여인의 과거와 전생의 인연
비록 동기가 불순하기는 했으나 출가 후 마등가 여인은 진정으로 불법에 귀의하였다. 하지만 최하층 신분으로서 감히 출가수행자가 되었다는 세간의 비난은 여전했고 아난 역시 그녀와의 스캔들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시달렸다. 이에 부처님은 모든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아난과 마등가 여인의 인연 그리고 그녀의 전생을 설법으로 말씀하시기에 이르렀다. 
아난은 전생에 부유한 전타라의 외아들로 그의 아버지는 욕심이 많아 바라문의 외동딸과의 혼인을 원했다. 하지만 혼인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바라문 외동딸로 인하여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인연으로 이들은 이번 생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아난은 그때 전타라의 외아들이며 그의 욕심 많은 아버지는 바로 사리불이라는 부처님의 설법에 많은 대중들은 두 사람의 인연을 비로소 이해하였다. 또한 저 높고 고귀한 바라문 사리불이 전생에 전타라였으며 마등가 여인은 바라문이었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신분에 대한 비난도 차츰 잦아들었다. 
어여뻤던 소녀에게 무심코 찹쌀떡 한 개를 더 줌으로써 빚어진 소동을 몸소 해명하신 것처럼 유혹과 공개구혼이라는 낯 뜨거운 스캔들에서도 부처님은 자신의 위신력으로 아난을 보호하신 것이다. 이 마등가 여인은 <마등가경(摩登伽經)>에서는 주연으로, <능엄경(楞嚴經)>에서는 오프닝을 장식하며 등장하는데 두 경전에서 모두 그녀는 아난에게 한 눈에 반하여 그를 유혹하는 동일한 역할을 담당한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깨달음은 가장 늦게 얻었던 아난
이러한 부처님의 지극한 보살핌 때문이었을까. 아난은 부처님이 살아계신 동안 아라한의 도를 증득하지 못한 유일한 십대제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그 대상은 불자뿐 아니라 외도들도 많았다. 왜냐하면 아난은 언제나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온화하게 사람을 대하였고 스스로를 내세우거나 자랑하는 일도 없었고 결코 타인의 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아난은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이들을 즐겁게 만들었고 불법을 믿지 않은 외도라 할지라도 그 자태와 분위기만으로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또한 부처님의 법문 듣기를 가장 좋아하고 한 번 들은 법문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총명함으로 불법을 찾는 이들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막힘없이 법문을 전해주었다. 법문을 전하는 아난의 모습은 확고한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복으로 충만하였다. 또한 부처님의 외모와 음성을 빼닮아 아난이 법문을 전하는 모습은 마치 부처님을 뵙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특히 아난을 통해 부처님 법문 듣기를 가장 좋아하는 이들은 바로 비구니 스님들이었다.

여성수행자의 수호자, 아난과 비구니 교단의 탄생 
부처님의 친아버지 정반왕이 세상을 떠난 후 카필라국의 왕비와 왕녀들을 비롯한 500여명의 귀족 여인들은 출가를 결심했다. 그녀들은 불법에 귀의하여 출가수행자가 되기 위해 카필라국에서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여인의 출가는 사회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었기에 부처님도 이를 쉽게 허락하지 못한 채 침묵만 지키실 뿐이었다. 
한편 출가를 간청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는 아난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퉁퉁 부르튼 발로 부처님을 찾아온 여인들은 모두 그의 숙모이자 누나이며 이모들이기도 했다.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어길 수도 없었으나 그녀들의 간절한 흐느낌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녀들을 대신하여 아난은 여인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부처님께 거듭 호소하였다. 그러나 아난의 애절한 호소에도 부처님은 여전히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아난은 부처님께 여인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었던 부처님은 여인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부처님이 침묵을 깨신 순간은 마침내 비구니 교단이 탄생한 순간이기도 했다. 비구니 교단의 탄생에는 이처럼 아난의 지극한 정성이 숨어 있었다. 
그 후로도 아난은 비구니 스님들이 교단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자상하게 지도를 해주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부처님께 들은 법문을 전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비구니 교단에서는 아난에 대하여 친근한 감정이 생겨났고 아난에 대한 비구니 교단의 신망과 존경이 매우 두터워졌다. 하지만 이 또한 화가 되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비구니 교단을 둘러싼 마하가섭과 아난의 마찰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곳에서나 사실을 왜곡하고 비트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비구니 교단을 향한 아난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아난처럼 잘 생기고 다정한 수행자를 본 젊은 비구니 스님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비구니 교단에서는 아라한의 도를 증득한 스님들보다 아난을 지도법사로 찾는 일이 잦았다. 아난은 아무런 의심 없이 비구니 교단을 자주자주 방문하였는데 한 번은 마하가섭과 함께 비구니 교단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하가섭이 누구인가. 부처님이 직접 마중을 나가 맞은 유일한 제자이자 공공연하게 부처님의 법을 부촉 받은 의발제자이며 아라한 도를 증득한 수행자이자 아난보다 나이도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출가도 빠른 대선배가 아니던가. 아난은 기쁜 마음으로 마하가섭에게 비구니 스님들을 위해 법문을 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비구니 스님들은 마하가섭이 아닌 아난에게 법문을 해줄 것을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난존자 앞에서 마하가섭 존자가 법문을 하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바늘가게 앞에서 바늘을 파는 것과 같다.”

자신을 바늘 파는 아이에 비유한 말을 들은 마하가섭은 비록 아라한의 도를 증득한 수행자였음에도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그는 즉시 수행으로 보나, 부처님의 믿음으로 보나 어디까지나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아난에게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아난은 마하가섭의 말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하가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정도로 아난은 여인들로부터 유독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인들에게 있어 한없이 이상적인 존재인 아난 같은 인물이 수행자가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아난 같은 남자가 한 여인의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여인들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무한한 자애로움을 가진 아난이 만약 한 여인의 남자로서 살아갔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찌감치 출가하여 인간적인 모습의 불완전함을 극복해 나감으로써 아난은 훨씬 많은 여인들과 인류 전체에 커다란 행복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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