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살, 반야바라밀은 여래의 어머니, 보리에 회향하는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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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oBama 작성일17-06-12 04:17 조회14,2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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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티가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 마하살이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열반에 드는 사람 중에서도 으뜸이므로 마하살이라 한다. 보살은 모든 법을 알고 일체 중생을 구하겠다는 큰 마음을 낸다. 그 마음은 금강석처럼 굳기 때문에 반드시 열반에 들고 열반에 드는 사람 중에서도 으뜸이 된다. 그 큰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은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서원을 세운다. 이 세상을 청정하게 정화시키겠다. 모든 존재의 모양에서 집착을 버리겠다. 모든 중생과 마음을 같이하겠다.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하겠다. 모든 중생을 구제할지라도 한 사람도 구제했다는 생각조차 가지지 않겠다. 모든 법의 생멸이 없음을 깨닫겠다. 밝은 지혜의 마음으로 육바라밀을 수행하겠다. 지혜를 닦아 모든 법을 알겠다. 모든 법이 공하여 모양이 없는 것임을 알겠다.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 실상을 깨닫겠다. 보살은 또 지옥 아귀의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을 가엾이 여겨 그 괴로움을 대신 받는 큰 마음을 일으킨다. 그래서 더러운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자기 이익에만 만족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 법을 믿고, 법을 참고, 법을 받고, 법을 수행하여 공에 머물러 열반에 드는 사람 중에 으뜸이 된다. 이러한 보살을 마하살이라 한다.” <대품반야경 금강경>
제석천을 비롯한 여러 천신들도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부처님과 스님들은 우리에게 법비를 내려주시니, 우리는 그 답례로 꽃비를 뿌립시다’ 하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꽃을 뿌렸다. 수부티는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꽃일 것이다.’ 이때 제석천이 말했다. “스님, 이것은 나무에 핀 꽃도 아니고 마음에 핀 꽃도 아닙니다.” “그 말도 옳다. 그러나 피지 않는 것을 어째서 꽃이라 이름하겠는가?” 제석천은 인연이 화합하여 된 물건에 임시로 붙인 그 거짓 명칭을 들어 교묘하게 법을 마하는 수부티의 지혜에 놀랐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수부티 존자는 어떻게 거짓 명칭을 들어 모든 존재의 실상을 말할 수 있습니까?” “사물은 모두 거짓 이름으로 불린다. 그 실상은 완전히 공이고 실체가 없다. 사물은 칭찬한다고 해서 더 할 것이 없고, 비방할지라도 줄어들 것이 없다. 그러므로 수부티는 어두운 세상 소견으로 붙인 거짓 이름을 쓰면서도, 그 이름은 거짓이고 자체는 없는 것이라고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 것이다. 여래란 어떤 모양을 갖춘 육신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일체지를 갖추어야만 여래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체지는 오로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얻는 것이므로 반야바라밀은 여래의 어머니이다. 일체지가 간직되어 있는 육신의 사리를 공경해도 그 공덕은 적지 않겠지만, 그보다도 일체지를 낳는 반야바라밀을 생각하고 공양하는 공덕이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이 반야바라밀만 이 세상에 있다면 온갖 선행과 지혜를 성취할 수 있고, 중생을 제도하여 이 세상을 맑게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법을 구하려면 반야바라밀을 생각하고 공양하는 것이 제일가는 공덕이 될 것이다.” <대품반야경 산화품>
미륵보살이 수부티에게 말했다. “만약 보살이 여러 사람이 쌓는 공덕을 기쁜 마음으로 도와 주고 또 자신도 그 공덕을 쌓아, 그것을 자기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성불하도록 널리 회향한다면, 그것은 실로 으뜸가는 공덕이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의 공덕은 자신만을 완전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여 구제하려는 것이지만 보살의 공덕은 모든 사람들을 완전하게 하고 깨끗이 하고 구제하기 위해서 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부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공덕의 근원인 여래를 생각하고 처음으로 보리심을 발하여 수행할 때부터 깨달음을 얻을때까지 잠시도 잊지 않고 모든 사람의 공덕을 같이 기뻐하면서 그것을 모두 보리에 돌려 보낸다면 그것은 둘도 없는 공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마음에, 나는 보리를 위해 회향했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른 공덕을 쌓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같이 기뻐한 대상에 마음이 걸리고, 또 회향한 사실에 집착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물과 마음에 집착이 남아 있는 동안은 바른 도를 성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부티는 말을 계속하였다. “처음부터 발심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 집착하려 해도 그 대상이 없고, 생각하려 해도 생각할 수 없는 반야바라밀임을 믿는다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배우는 보살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믿고 항상 선지식에게 법을 물어야 합니다. 선지식은 그를 위해 육바라밀의 뜻을 잘 해설해 주고,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게 해 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보살은 모든 법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므로 설사 악마의 가르침을 듣게 되더라도 거기에 빠져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대품반야경 수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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