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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거사에게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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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oBama 작성일13-03-10 16:46 조회16,5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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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내용은 2013년 3월 6일 달라스 보현사에서 있었던 수요참선 시간에 지암스님께서 말씀 해주신 내용을 요약한 것 입니다.  제가 옮기는 과정중에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과 본의 아니게 다르게 옮겨 졌을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혹시 내용을 읽어 보시고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지암스님께 질의를 하셔서 잘못된 점을 정정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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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방 선방모임 식구들은 여러분이 근기가 되든 안되든 저를 만난 인연으로 여러분 스스로 자성을 깨달을 때까지, 견성을 할 때까지, 견성해서 여러분의 본지풍광, 여러분의 원래 모습을 다 들여다 볼 때까지.. 저랑 인연을 지었으니 시간시간 신심이 나던 안나던, 내 말을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여러분들이 공부를 재미를 부치던 안 부치던,  여러분 스스로 이 수요일 저녁에 오시는 한 어쨌거나 머릿속을 비워내고 가슴속도 비워내서 내 말을 그대로 알아 들어주기 바랍니다.  우리 최상선인 간화선 깨닫는 법이 얼마니 좋으냐 하면, 오로지 모르는 그 자리를 의심을 하고 의심을 해서 그 의정을 키워나가서 그 의정삼매에 들어가 있으면 '언하(言下) 학철대오(確哲大悟)'라고 해요. 언하, 말아래 깨닫는다고 하는거예요. 지금 스님 법문을 듣다가도 여러분이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그 머리가 끊어 졌을때..  그것을 내가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계속 정진이라는 시시때때로 나를 깨어 있어서 알아채려서 또 망상 했구나 알아차리면 화두로 돌리고, 또 내마음이 일어나는데로 끄달려 갔구나 하는 것을 알아챘으면 또 호흡에 집중을 하고.  이게 억만번이면 어떻습니까?  계속 하셔야 언하대오를 하던지 자동차 경적소리에 대오를 하던지 뭔 수가 날 것 아닙니까?  다시 시간시간 여러분들이 이 인연을 맺은게 쭉정이가 되지 않도록 해주시면 여러분이 좋죠.  저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땡겨 볼려고.. 여러분이 업(業)놀음에 휘청휘청 하는것.  풍진객(風塵客)이라고 하죠?  바람결에 티켤이 막 휘날려 다니잖아요. 우리가 업겁생을 윤회를 하면서 색욕에, 명예욕에, 물질욕에 그렇게 끄달려 다녀서 뭐 재밌는게 어디 있는가?

법문 듣는 마음을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하게 여겨야 하시냐면?  그래야 언하에 대오를 합니다.  법문을 하루 듣고 지난번에 들은 얘기라 생각하고, 어디선가 본 내용이네 하는 오염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순수한 정진을 할 수 없습니다. 정진이라 함은 정말 겸손해야 하고, 끊임없이 나를 참구할려고 나를 비워내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계속 자기 소견을 가지고 법문을 듣게 되면 언제 우리가 오롯해 질 수 있을까요? 언제 이 순간 이 자체만 오롯해 보냐 말입니다.  도반으로 만났고, 혹은 여러분이 겸손지심에 저 스님이 나를 가르치는 선지식이다 생각이 들거들랑 제발 그 분별심을 내려놓고, 머리 돌리는 것도 좀 끊어버리고 그대로 듣고 보고 해 보십시요. 
화두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계속 그 가치를 모르고 해매는 사람이 있는걸 보니 내가 도력(道力)이 없어서 그렇다 생각을 합니다.

본격적으로 기록되어 도인들의 말씀인 제가 교재로 쓰고 있는 이것(불교성전)이 내가 출가할 때 부처님께 남긴 책입니다. 금강경을 읽다고 이 '나'라는 놈이 이런거였구나. 내가 이렇게 고뇌하고 갈등했던 장본인이 머리가 이렇게 뜨겁게 살았던 게 이거였구나하고 금강경에서 발심은 했는데, 본격적으로 전문 수행은 불교성전을 보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곳 보현사에서 와서 이 불교성전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출가할 때 이것을 보고나서 보현사에서 법회를 하기위해서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 도인들 말씀부터 부족함이 없게 편집을 잘 해놨더군요. 선방모임 식구들은 이 사상단법어거든요?  달마스님도 그렇고, 우리나라 해동으로 오셔서 인가받은신 분들도 다 도인이세요.  기록되어 있는 이 교과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핵심적인 것은 다 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방모임 식구들에게 불교성전을 가지고 반복을 해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자 한번씩 보세요.  보시고 나서 질문도 좀 하시고요. 우리 참선식구들은 경(經)보다는 어록(語錄)부분만 한번 읽어보세요. 태옹 성철스님도 그렇고, 서옹 큰스님도 그러셨고.  큰 대중 스님네 한테 주기적인 법회를 하실때 육조단경이나 수심결같은 이런 글을 펴놓고 법문을 해주시곤 하셨습니다.

불교성전에 있는 글 중에서 방산거사에게 보낸 글 중 일부를 보면..

{편지에 '생각이 잠깐 일어날 때에는 그 화두를 드니 이 공(功)이 더욱 미묘합니다."고 하셨습니다.  옛 스님은 말씀하시길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더디게 깨닫는 것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또 '생각이 일어나거든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질 것이다."라고도 했으며, '생각은 모든 환경을 반연하는데 마음은 분별을 아주 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검고 흰 것을 잘 분별하고 이익과 손해를 살펴 그 구경(究竟)에 이르면 다행인것 같습니다. 주신 편지에 정하신 뜻이 못내 간절하여 다시 번거롭게 말합니다.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생사라 합니다. 생사에 다다라 반드시 힘을 다해 화두를 드십시요. 화두가 순일해지면 일어나고 멸함이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일어나고 멸함이 없어진 곳을 고요함(寂)이 하며, 고요한 속에서도 화두에 어둡지 않는것을 무기(無記)라 하며, 고요한 속에서도 화두에 어둡지 않는 것을 영지(靈知)라 합니다. 이 비고 고요한 영지는 무너지지도 않고 난잡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공을 들이면 머지않아 공을 이를 것입니다. 몸과 마움이 화두와 함께 한 덩이가 되어 의지하는 곳이 없고 마음의 가는 곳이 없으면, 그때는 다만 방산 거사 하나뿐인 것입니다. }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생각이 일어나는 게 두렵지 않으나, 그것을 알아채리는 것,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는것이 더딜까봐 겁이 난다 이 소리잖아요. 평소에 제가 뭐라 그래요?  화두를 들려고 작정할 때 깨어있으라고 하잖아요.  깨어있으라는 게 내가 지금 생각을 뭘 했구나 하고 알아채는 거라 그랬잖아요.  그 말이잖아요.  알아채리는 것을 제때제때 못하는게 두렵다는 말입니다.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끄달려 가는게 두렵다는 겁니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게 두렵다는 겁니다. 생각이 일어나는게 두려운 게 아니고요.  이게 뭐예요?  깨어있기를 잘 하고 있으라는 얘기잖아요.  알아채면 진행 안한다고 그랬잖아요.  여러분 경험은 해 보셨죠?  알아채면 진행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계속 반복을 해야 합니다.  '생각은 모든 환경을 반연하는데 마음은 분별을 아주 끊는다.' 이 부분은 여러분이 그 자리를 봐야지 알 수 있는 겁니다.  선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중생놀음 생각이 생멸 하는것을 정신 차려서 아는건 검고 흰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며, 그게 지혜입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고요함이요, 고요함 속에서 화두가 없어진 것을 무기라고 합니다. 번뇌가 없어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며 그게 우리가 지향하는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번뇌가 일어나는것을 두려워 하면 안됩니다. 번뇌가 없어지는 그 자리가 깨달음이 아닙니다. 그걸 '무기'라고 하잖아요.  그건 목석하고 똑같은 겁니다.  번뇌가 없는 그 고요함 속에서도 화두에 어둡지 않는것을 신령한 지혜라고 합니다.  소소영영 알아채면서 '이뭣고' 하고 의문을 갖지 않은면 영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조금 되는것 같네요. 

{그래서 끊어지는 때가 있거든 다시 용맹스런 마음을 내고 공력을 더 들여 끊임이 없게 하십시오.  하루에 한 번도 끊임이 없게 되었다면 정력(定力)을 더욱 기울여 때때로 점검하되 날마다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만약 사흘 동안 순일하게 끊임이 없으면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에도 한결같고 말하거나 침묵할 때에도 한결같아 화두가 항상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흐르는 여울의 달빛처럼 부딪혀도 흩어지지 않고 헤쳐도 없어지지 않으며, 휘저어도 사라지지 않고 자나깨나 한결 같으면 크게 깨칠 때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

내가 화두를 안 들고 싶은데도 계속 들게 되는 상태가 옵니다. 그 의심덩어리가 안 흩어지고 그대로 있는 상태가 옵니다. 이걸 맛보지 못하고 나는 공부를 했다하면 그건 순 거짓입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내가 알아챘다거나 무아(無我)나 공(空)을 알았다고 하는건 그건 천하의 못쓰는 것 입니다.  경을 보면서도 잠깐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건해라고 합니다.  번개가 뻔쩍할 때 잠깐 드러나는 것, 그 잠깐 빤짝하고 본 것을 어디다 써먹겠다는 겁니까?  지금 우리가 육안을 가지고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듯이, 언제든지 내 앞에 선명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빤짝 아는것 가지고 교만을 내고, 내가 그걸 알았내 어쨌내 하는건 천하의 못쓰는 것 입니다. 항상 의단덩어리를 만들라고 애써라 이 말입니다.  의단덩어리가 되고 나면 깨닫는것은 저절로 됩니다.  경허스님은 어디서 깨달았습니까?  정진하시다가 밖에서 잡담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밖에서 동자하고 처사가 말하는걸 듣고 깨달았단 말이예요.  그걸 언하대오라고 하는 겁니다.  어떤 말도 법문으로 들려요.  그것 여러분이 맛을 봐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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