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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치기를 기다리면 깨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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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oBama 작성일13-03-27 22:54 조회5,69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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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내용은 2013년 3월 27일 달라스 보현사에서 있었던 수요참선 시간에 지암스님께서 말씀 해주신 내용을 요약한 것 입니다.  제가 옮기는 과정중에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과 본의 아니게 다르게 옮겨 졌을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혹시 내용을 읽어 보시고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지암스님께 질의를 하셔서 잘못된 점을 정정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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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참선곡을 먼저 염송을 하고 참선모임을 시작하자고 정했나 하면은요?  제가 사실 여러분보다 근기가 낮은 사람일수도 있거든요. 왜냐하면, 근기가 낮으니까 여러분처럼 욕망의 세계, 티끌의 세계에서 할 자신이 없어서, 전 물이 들어서 도저히 여러분처럼 여기서 발심을 하고 여기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것을 내 근기로 못 하겠더라구요. 전 근기가 낮아서 출가를 한겁니다.  실제로 이 공부를 해서 깨닫는거는 이렇게 삭발을하고 옷을 바꿔 입는다고 하는게 아니예요.  이렇게 어떤 계(戒)로 들어가고 어떤 전을 깔아놓은데로 들어간거는 내가 환경의 도움을 받겠다는 겁니다.  나는 도전히 세속에 살면서 명예, 물질 그런 오욕(五慾)에 물들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공부를 할 자신이 스스로 없다고 제 근기를 진단을 했었습니다.  제가 출가 자체를 스스로 제 근기를 계산해서 한 사람입니다.  이 공부가 종국에 꼭 하고 싶은 공부고, 내가 꼭 해야하는 공부라는 것은 이미 설정은 되어있었으나,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에 대해, 적당히 욕망에도 타협을 하고, 우리 세간 관습과 인습을 초연히 무시하고 이것을 용감하게 부모형제, 친구들 옆에서 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제 근기로는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혈육의 정(情)도 여의고 때고, 규칙들도 내 스스로 타이트하게 만든 세계에, 형상도 이렇게 탁 바꿔서 마음 자세를 이렇게 할 것을 제가 선택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들보다 근기가 낮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스님이니까 이런 생각들은 하지 마세요. 여러분 다 수승하십니다.  근기가 낮은 사람으로서 이 참선곡이 개인적으로 정신차리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거든요. 

참선곡을 1.5세나 2세들은 잘 모르잖아요. 우리 말 중에서도 옛날 말이 많으니 모릅니다.  도반들이나 스님들에게 물으시면 되는데.. 모르시더라 해도 말이라는건 묘한 것이라.  이것 역시 우리 머리 세계에서 나온것이고, 우리가 만들어낸 구조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경(經)을 보다보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게 많습니다.  그것들을 불교사전등을 뒤져 가면서 볼수는 없잖습니까? 그런데 모르는 말들은 계속 나오고요.  금강경 같은 경도 참선을 하면서 계속 보게 되면 그만 저절로 알아지게 됩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 하고 알게 됩니다.  글자 문자로 해석한 것보다 더 정확한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이 참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그런데 안 되잖아요?  정신이 안 차려지고 운전하면서 또 속아 버리게 되잖아요.  또 속아서 망념에 끄달려가고.  그렇게 알아차리고 하건만 알아차리는 건 한시간정도 했다가 그만 가는길에 다 잊어버리고, 내일 걱정 지난간 걱정 등 쓸데없는 '탐신진심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분별 날마다 분요하니'.  이 말에 우리 누가 자유롭습니까?  자유로운신 분 있으세요?  쓸데없는 허다분별의 경계가요?  나는 참 쓸데없는 허다분별 안하다 싶으시죠?  세상의 뉴스에 별로 상관을 안하고, 절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대소사에 무심하고, 이웃간의 일도 무심하고 별로 안 일으키는 사람이라 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그게 들여다보면 우리 뇌라는 놈이 여우라.  오죽하면 부처님께서 우리 생각, 마음 작용을 원숭이에 비유를 했을까요?  원숭이란 놈은 한시간을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를 마음을 비유를 했거든요.  우리 동양으로 가면 고삐 풀린 소에 비유를 합니다.  소는 왜 코뚜레를 해요?  코뚜레가 없으면 소가 자기 마음데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 자리 찾는것을 소를 찾는것으로 은유적으로 비유를 해 놓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나라는 생각이란 덩어리가 참 그렇게 억세고 무지막지 한 겁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단련을 할 건가요? 

뉴스처럼 감각적인 것들을 내 안에 누적된 억겁생을 습관해온 오욕도 굉장한데 계속 끄달려서 퍼질르고 산단 말이예요?  그런데 안되죠.  이를 알아채리고 싶어도 좀 되는 듯 싶다가 천리만리 또 다녀오고, 또 욕풍이 일어나죠.  그럴때 일어날 때, 원숭이나 소가 제 맘데로 날뛰게 두지 말아야죠.  그때 딱 날 뛰는걸 알아챘을때, '이것' '이것' 하고 딱 보란 말입니다. 

그게 권태로와지는 때도 있습니다.  거친 망상은 안 나는데 진도는 안 나가고 포커스는 안 맞춰지고 할 때가 있습니다.  권태가 올 때는 경허스님 말씀데로 주머니에 넣어 놔두었다가 한번 탁 보는게 도움이 됩니다.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소냐.  오호라 이내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속의 등불이라. " 절절히 안 와닿습니까?  우리 도반들은 이게 다 와 닿을것 같아요.  왜냐하면 근기가 다 수승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풀끝의 이슬이라는것을 얼마나 많이 잊고 살고 있습니까? 이런 경책을 자꾸 하자구요. 

저 개인적으로 숲속에 들어가서 염송을 했는지 모릅니다.  제 업풍이 퍼 일어나고 화두가 잘 안 잡힐 때마다 이걸로 정신을 차리고 개인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저는 송담큰스님의 이뭣고를 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이뭣고를 기가막히게 설명을 해 놓으셨잖아요.  "소소영영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설명을 더 잘해 놓을 수 있나요?  지금 듣고 있는 여러분.. 그것.. 그것을 마음이라 하니 마음도 엄밀하게 아닐뿐, 말이고 명칭일 뿐이죠.  부처라고 하니 누가 부처라고 했습니까?  마음을 교학적으로 들고 와서 알음앓이로 퍼질러 놓고 하니, 사실 깨닫고 보면 교학들고 오는것은 똥걸레 뿐이거든요.  그것 갖고 계속 고집을 하고 하도 물건이라고들 하니...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마음도 아니고, 신성도 아니고,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이것을 뭐라고 갖다 부쳐야 하겠냐 하게 된 거죠.  이런것을 평소에도 써먹으세요.  평소에도 쓸데없는 탐심진심과 허다분별에 내가 회오리를 칠 때, 이것을 탁 꺼내보세요.  또 다른것들도 많찮아요.  저 개인적으로 참선곡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가 좋으면 권하게 되잖아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부처님 경전을 보던지 도인들의 게송을 볼 때 탁하니 가슴에 와 닿는게 있다면 그런걸 하나 잡아채서 사용해보세요. 우리 108배 참회문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근기 높은 여러분께서는 저보다 훨씬 속도 빠르게 하실수 있습니다.  그 가족사에, 업연에 얽히신 그 몸으로도 이 공부를 하시겠다고 마음을 내셨잖아요.  그러니 좀 근기가 수승하십니까?  그 중생상은 다 쓸데없는 망상입니다.  딱 믿어버리면 내게 있는걸 못 찾아냅니까?  내 낯판데기를 내가 모릅니까?  전강큰스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던 말입니다.  자기 낯판데기를 모르면서 잘난체 한다고요.  (스님께서 얼굴을 가르키면서..) 이게 자기 낯판데기인줄 알고 거울을 보면서 다듬기나 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을 보고 다듬을려고 함을 아는 놈을 한번 들여다 볼려고 해보세요.  거울속에 비치는 낯판데기 말고.  '진짜 거울에 비친 네가 너라고? ' 우리 서산도인은 어떻게 열반하셨습니까?  거울을 꺼내놓고 허허 웃으시면서, 80년 전에는 내가 거울에 비친 너를 보고, 80년 전에는 네가 나인줄 알았더니, 80년 지난뒤에는 내가 보니 내가 너네 하며 허허 웃으시고 열반 하셨잖아요?  진짜 나를 알고 싶은 마음만 꽂히면 처처(處處)이 법문 투성입니다.

박산무이선사(博山無異禪師) 선경어(禪警語) 중의 글 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공부를 못하면 도철이지 싶습니다.  도철은 도저히 도심(道心)이 안나는, 진리의 대한 마음이 전혀 없는, 철학적인 사유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미물을 말합니다.  쇠를 먹는다나 하는 전설적인 축생을 말한답니다.  그정도로 철학적인 사고,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못하는것을 말합니다.  우리 그걸 다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선방 모임이 오신거잖아요.

참선하는 데 깨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길에 간다면서 도중에 앉아 가지는 않고, 집에 닿기만을 기다린다면 그는 끝내 나그네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집을 향해 가야 집에 이를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으로 깨닫기만을 기다린다면 깨치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화두를 잡아 힘쓸 뿐 깨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 내가 깨칠것이다 하고 들어와서, '이뭔가?' 하고 그냥 하면 되는거지, '이뭔가?' 하다가 이러다가 언제 깨치나 깨달아야지 하면 안되는겁니다. 그건 보통 병통을 만들어내는 망상이 아니거든요.  그냥 '뭔가?' 해야 합니다. 호흡을 지켜보는 분들은 호흡을 놓치는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호흡 놓친것을 알아채지 못한것을 무서워 해야 합니다.  호흡 놓치는건 언제든지 놓칠수 있습니다.  헤아리는 것.  그것을 그냥 놔버리고 가버리는 것 그게 무서운 일입니다. 

정진에 진취가 없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진취가 없거든 더욱 힘쓰는 이것이 공부다. 향상(向上)이 없다해서 머뭇거린다면 비록 백 겁 천생을 기다린다 할지라도 누가 어떻게 해 줄 것인가. 의정이 일거든 놓지 않는것이 향상이다. '생사' 두 글자를 이마에 붙인 듯 생각하고 마치 점에게 쫓기듯이 쉬지 말고 정진하라.
--> 향상은 진전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어떤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줄 알 수 있습니까?"라고 오늘 누군가 질문을 했었습니다.  어떤 단계로 나아가는지 스스로 진단할려고 하는게 큰 망상입니다.  의정이 잠깐이라도 있을때 잡아채는게 기회인것입니다.  밥이 좀 타면 어떻습니까? 의정이 만들어질려고 하는 찰라에 십만불이 생길수 있는 약속이 있을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죠?  십만불짜리를 선택하느라 무가보(無價寶)를 잃어버리는 겁니다.  무가보,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머어마한 자기 보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리석습니다.  그때 선근이 나오게 됩니다.  내가 이 기회를 안 놓치고 저절로 선정이 나와 질때까지 '이뭣고?' 하고 들어가 보는것.. 그렇게 해야 보이는 겁니다.  그만 십만불에 정신이 팔려서 이 아까운 기회가 왔는데도 일단 십만불을 챙겨놓고 하면, 십만불은 생길지 몰라도 억만금의 보배를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신(信)이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자욱자욱 사지(死地)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우리를 잡아 먹을려고 언제 어디든지 쫒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숨이 언제 끝날지 아세요?  모르죠?  그런데도 십만불을 선택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여러분이 끝났어요.  자신있어요 없어요?  그래도 십만불을 선택하잖아요?  그게 뭐라고.. 우리 자신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헛개비로 살고 있는지.  이게 생노병사의 대한 자각이 없으면 공부 못해요. 그건 동물이예요. 동물은 그냥 살잖아요.  무상살귀 그게 얼마나 신속히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세요? 그런데도 십만불을 향해 가실겁니까?  무상살귀에 쫓기듯이 그렇게 급한 마음을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안전지대로 가지못하면 무상살귀한테 잡아 먹히거든요.  결국은 먹히고 말것이니 어째 다리가 좀 아프다고 좀 고달프다고 좀 애롭다고 좀 재미없고 심심하다고 이것을 안할거냐 말입니까?  어째 타성에 젖어서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뭔 수가 나려니 합니까?  지금 해결을 못하는 이게 나중에 어느 세월에.. 차신불향 금생도 갱대하생 도차신 (此身不向 今生度 更待何生 度此身). 지금 금생에 이 복을 만나서 이 공부를 하면서 내 몸을 제도 못하면, 언제 어느생에 또 이 법을 만나서 언제 제도를 할 것인가?

댓글목록

자비광명님의 댓글

자비광명 작성일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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