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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27, 구름은 어디서 일어나고 어디로 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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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8-06-26 16:58 조회2,4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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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고 머물고 집착하는 것이 다하면

그대로가 여여부동한 모습
하되 함이 없이! 

착각하지 않으면 집착도 없다

묘법을 몰랐을 때 신비한듯 하나
알고나면 묘할 것도 없다
부처님 법신은 허공과 같아...
구름은 어디서 일어나고

어디로 사라지는가...


 성문은 아직 닦아야 할 무엇이 있는 줄 알고 계속 수행의 힘을 빌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을 하거나 않거나에 관계없이, 또 굉장한 업을 지녔든 업을 지니지 않았든, 그 본바탕 성품은 둘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업식의 작용에 따라 변한 모습을 이런 저런 인연으로 쓸 뿐이다. 이것을 알면 내려 놓으면 되는데, 성문은 수행을 통해 업식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래 마음자리를 증득하여 얻은 힘을 통해 세월을 보내면, 그것이 바로 약이다. 그러나 그런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안에 독한 것이 드러나면 억지로 없애려고 든다.

 다만 당장에 자기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단박 깨달으면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한 행도 닦을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위 없는 도[無上道]’이며, 이것이 바로 진여불(眞如佛)이다.
불법의 바다[法海]에서 파도는 천차만별로 온갖 차별된 경계를 이루지만, 그 바탕은 한 번도 차별된 적이 없는 절대 평등의 대원경지(大圓鏡智)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일어나는 것만을 두려워하면, 곧 도와는 멀어진다. 생각마다 상(相)이 없고, 생각마다 ‘함이 없음[無爲]’이 곧 부처이다.
하루 종일 생각해도 생각한 바가 없는 것이다. 본래 그 자리는 인과(因果)를 초월해서, ‘인’이라 할 것도 없고 ‘과’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없다. 그런 상태에서 홀연히 바람이 일어 모양이 만들어지면서 시공이 생긴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원인을 짓고 그에 따른 과보를 받는 것을 반복하면서 생사에 출몰한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는 것을 부처님께서 깨닫고 우리에게 알기 쉽게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묘법이다. 묘한 법의 가르침은 다 드러나 있지만, 내가 몰라서 비밀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묘한 것일는지 몰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항상 가지고 쓰고 있어 묘할 것도 없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면, 불법을 모조리 배울 것이 아니라 오직 ‘무구(無求)’와 ‘무착(無著)’을 배워야 한다. 구함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집착이 없으면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이 곧 부처다.
찾고 구하고 머물고 집착하는 것이 사라지면, 늘 여여부동한 모습이 함께 한다. 구하지 말라는 말은 설명하기도 어렵고 소화하기도 힘든 말이다.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면, 무기공(無記空)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되 한 바 없이 한다’ 혹은 ‘어디에도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고 겨우 표현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일체 모든 그림자를 포용할 수 있는 허공을 법신이라고 한다. 법신이란 어떤 정해진 모습이 아니다. 천차만별의 모습을 갖추고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망라하여 하나의 모습으로 안고 있는 실상을 법신이라고 한다.

 팔만사천 법문은 팔만사천 번뇌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다만 대중을 교화 인도하는 방편일 뿐, 본래 일체의 법이 없다.
 

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여읠 줄 아는 이가 곧 부처다.
일체 번뇌를 여의기만 하면, 얻을 만한 법이 없다.
이런 말을 들으면, 번뇌를 여의려고 자꾸 애를 쓴다. 본래 법이란 일체 번뇌를 만들기도 하고, 변화시키고 없애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어떤 것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하루 종일 번뇌를 일으켰지만, 한 번도 번뇌를 일으킨 적이 없는 것이다. 허공이 과거의 허공이나 현재의 허공이나 미래의 허공 할 것 없이 한 번도 변화한 적이 없는 것과 같다. 변해진 것이 없는 가운데, 단지 구름이 일어났느니 사라졌느니 하는 이야기만 오고 갈 뿐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깨닫는 비결을 터득하고자 한다면, 단지 마음 위에 한 물건도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말에도 집착하면 안 된다. 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깨달음이 필요하지, 말을 배우고 이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다른 지식과 설득력을 지니면 세상 기준에서는 똑똑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만으로는 실상을 봤다고 할 수 없다.

 법신이 곧 허공이며 허공이 곧 법신인데도 ‘법신이 허공계에 두루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허공 가운데 법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며 허공 그대로 법신임을 모른다.
성성적적(惺惺寂寂) 공적영지(空寂靈知)를 빌려 법신자리를 설명하곤 한다. 모양은 허공과 같지만 허공은 차고 더운 것을 모르는데, 법신은 차면 찬 줄 알고 뜨거우면 뜨거운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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