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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년 기해년 종정예하 하안거 결제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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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현사 작성일19-05-17 09:30 조회1,3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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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年 宗正猊下 夏安居 結制法語
     

종정예하 사진 줄임.jpg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若論此事(약론차사)일진댄
千聖靈機不易親(천성영기불이친)이라.
龍生龍子莫因循(용생용자막인순)하라.
眞際奪得蓮城壁(진제탈득연성벽)하니
秦主相如摠喪身(진주상여총상신)이로다.
 
이 일을 논할 진댄
일천성인의 신령한 기틀도 쉽게 친하지 못한지라.
용이 용새끼를 낳아서 따른다고 이르지 말라.
진제가 연성의 보배구슬을 빼앗아 가지니
진나라 임금과 상여가 다 생명을 잃음이로다.
 
금일(今日)은 기해년 하안거 결제일이라. 여름과 겨울에 사부대중이 모여서 결제하는 수행전통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이루어지는 훌륭한 전통이다.
 
그러면 대중이 이렇게 함께 모여서 수행(修行)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느냐?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천이백 대중을 모아놓고 물으시기를,
“대중이 얼마나 공부를 시켜 주느냐?"
하니, 아난 존자(阿難尊者)가 일어나서 말씀드렸다.
“대중이 반을 시켜줍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네가 잘 알지 못했다. 대중이 전체를 시켜주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대중의 힘이라는 것은 무섭다. 게으름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대중이 모여서 공부를 하게 되면, 그 가운데는 용맹(勇猛)과 신심(信心)을 내어 애쓰고 애쓰는 이나,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에 들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참구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러한 이들을 보고 각자가 자신을 반성하여, 다시 신심(信心)을 내고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를 다져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대중이 공부를 전체 다 시켜 준다고 하셨던 것이다.
 
결제에 임하는 사부대중은 다시금 결제가 갖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금번 결제에는 반드시 대오견성하겠다는 용맹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결제에 임해야 할 것이라.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상생활(日常生活)하는 가운데 챙기고 의심해야 할 것이라.
그리하다 보면 문득 참의심이 발동하여 보는 것도 잊고 듣는 것도 잊고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푹 빠져 있다가,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고 마음의 고향에 이르게 됨이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설산(雪山)에서 6년의 용맹정진 끝에 일념삼매에 들어 납월 팔일 새벽 별을 보고 대오견성(大悟見性)하셨음이라. 그 후에 대중들에게 49년간 가지가지의 방편법문을 하셨다.
대중에게 세 번 특별한 법문을 하신 것을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한 번은 인천(人天) 백만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좌정(坐定)하고 있을 때,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부처님께 우담바라 꽃을 올리니 부처님께서 그 꽃을 받아서 아무 말 없이 대중에게 보이시니 오직 가섭 존자(迦葉尊者)만이 빙그레 웃으셨다.
 
또 한 번은, 법회일에 모든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서 다 운집(雲集)해 있었는데 맨 마지막으로 가섭 존자(迦葉尊者)가 들어오니,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기 위해서 법상에 좌정해 계시다가 자리의 반을 비켜 앉으셨다.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그 뜻을 알고는 선뜻 그 자리에 가서 앉으니, 부처님께서 가사를 같이 두르시고 대중에게 말없이 보이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일주일 후에, 교화(敎化)를 위해 수백 리 밖의 타방(他方)에 가 있던 가섭 존자가 돌아와, 부처님의 시신을 향하여 위요삼잡(圍繞三匝)하고 합장 예배를 올리며,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 사생(四生)의 자부시여! 우리에게 항상 법문하시기를,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원래 없다. 하시더니, 이렇게 가신 것은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칠 푼 두께의 금관 속에서 두 발이 쑥 나왔다.
그래서 가섭 존자가 다시 합장 예배를 올리니, 두 발은 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관이 그대로 중천(中天)에 떠올랐는데 이 때, 지혜삼매(智慧三昧)의 불이 일어나 허공중에서 화장(火葬)되어 팔곡사두의 사리가 나왔다.
 
이렇듯 당시에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오직 가섭 존자만이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를 알았기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마하 가섭에게 전해 주노라.”
하시어 가섭 존자에게 견성심인법(見性心印法)을 인가(認可)하여 전하셨다.
 
이 삼처전심의 법문을 알아야만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아는 것이고, 만 중생을 지도함에 있어서 눈을 멀게 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을 일생 따라 다니면서 모셨던 아난 존자(阿難尊者)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였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가섭 존자에게 가서 물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에 가사와 발우를 신표(信標)로 전했는데, 그 외에 따로 전하신 법이 있습니까?”
이에 가섭 존자가 “아난아” 하고 부르자, 아난이 “예” 하고 대답하니,
“문전의 찰간(刹竿)을 거꾸러뜨려라.” 하고 가섭 존자가 한 마디 던졌다.
그러나 아난 존자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졸다가는 떨어져 죽게 되는 아주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3·7일간 용맹정진하여 그 도리를 깨달아서 가섭 존자의 법을 이어 받았다.
 
그 법이 제 3조인 상나화수 존자에 전해지고 등등상속(燈燈相續)하여 제 28조 달마 조사에 이르게 되었다.
 
달마 조사는 인도에서의 인연이 다함을 아시고 중국으로 건너와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을 하면서 시절인연을 기다렸다가 비로소 법을 전해줄 큰 그릇을 하나 만났는데, 그 분이 바로 혜가(慧可) 스님이다.
 
달마 대사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르셨다.
“너희들이 이제까지 정진(精進)하여 증득(證得)한 바를 각자 말해 보아라.”
그러자 도부(道副) 스님이 일어나서 말씀드리기를,
“제가 보는 바로는, 문자에도 국집(局執)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아니하는 것으로 도(道)의 용(用)을 삼아야겠습니다.” 하니,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라고 점검하셨다.
다음에 총지(總持)라는 비구니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는 바로는 경희(慶喜)가 아촉불국(阿閦佛國)을 한번 보고는 다시 보려고 한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또, 도육(道育) 스님은,
“이 몸뚱이는 본래 공(空)한 것이고 오음(五陰)이 본래 있지 아니하니, 한 법도 마음에 둘 것이 없습니다.” 하니, 대사께서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라고 점검하셨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 스님이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다.”
하시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심인법(心印法)을 혜가 스님에게 부촉(付囑)하시니 이조(二祖) 혜가가 되었다.
 
달마 조사는 “내가 동토(東土)에 와서 법을 전함으로 미혹(迷惑)됨을 풀어 주매, 마치 한 송이 연꽃에 다섯 송이가 핀 것 같은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라고 일화오엽(一花五葉)을 수기(受記)하셨다.
 
육조(六祖)인 혜능 선사는 나무꾼으로서 시장에서 탁발승이 금강경(金剛經)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홀연히 깨달았다.
그 후 황매산의 오조(五祖) 홍인(弘忍) 대사 회상을 찾아가서 방앗간에서 행자(行者)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오조 대사께서 대중에게 이렇게 공포하였다.
“모두 공부한 바 소견(所見)을 글로 지어 바쳐라. 만약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법(法)을 전해서 육대조(六代祖)로 봉(封)하리라.”
그러니 신수(神秀) 상좌가 게송을 벽에 붙여 놓았다. 오조께서 그것을 보시고, “이 게송대로 닦으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큰 이익이 있으리라” 하시며 향 피워 예배하게 하고 모두 외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온 대중이 신수 상좌를 칭찬하며 그 게송을 외웠는데, 마침 한 사미승이 그 게송을 외우면서 노 행자(盧行者)가 방아를 찧고 있던 방앗간 앞을 지나갔다.
노 행자가 그 게송을 들어보고, 그것이 견성(見性)한 사람의 글이 아니니, “나에게도 한 게송이 있는데, 나는 글자를 모르니 나를 위해서 대신 좀 적어다오.” 하고 게송을 읊었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
이 게송(偈頌)이 신수 상좌 글 옆에 붙으니 대중이 모두 놀라 서로들 웅성거렸다.
오조 대사께서 그 소란스러움 때문에 나오셔서 그 게송을 보시게 되었다.
보시니 그것은 진리의 눈이 열린 이의 글이라, 대중이 시기하여 해칠 것을 염려하셔서 손수 신짝으로 지워 버리면서 말씀하셨다.
“이것도 견성한 이의 글이 아니다.”다음날, 오조 대사께서 가만히 방앗간에 찾아가서 쌀을 찧고 있는 혜능에게 물었다.
“방아를 다 찧었느냐?”
“방아는 다 찧었는데 택미(擇米)를 못했습니다.”
이에 오조 대사께서 방앗대를 세 번 치고 돌아가셨는데, 노 행자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대중이 다 잠든 삼경(三更)에 조실방으로 갔다.
오조 대사께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가사(袈娑)로 방문을 두르시고 금강경(金剛經)을 쭉 설해 내려가시는데,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어다(應無所住 而生其心)’ 하는 구절에 이르러서, 노 행자가 다시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오조대사께 말씀드리기를,
何期自性 本自淸淨(하기자성 본자청정)
어찌 제성품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本不生滅(하기자성 본불생멸)
어찌 제 성품이 본래 나고 죽지 않음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本自具足(하기자성 본자구족)
어찌 제 성품이 본래 구족함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本無動搖(하기자성 본무동요)
어찌 제 성품이 본래 흔들림 없음을 알았으리까 何期自性 能生萬法(하기자성 능생만법)
어찌 제 성품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까
하니, 오조께서 노 행자가 크게 깨달았음을 아시고 법(法)을 전하시니, 이 분이 바로 육조 혜능 선사이다. 혜능 선사에 이르러 중국선종인 조사선이 확립되었다.
그 심인선법(禪法)이 홑[單]으로 전해지다가 육조(六祖) 혜능 선사에 이르러서는 그 문하(門下)에서 크게 흥성(興盛)하여 많은 도인(道人) 제자들이 배출되어 천하를 덮었다.
 
그 가운데 으뜸가는 진리의 기봉(機鋒)을 갖춘 분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와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이다.
이후 청원 행사, 남악 회양 두 분 선사의 계파(系派)를 쫓아서  선가(禪家)의 오종(五宗)이 벌어졌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에서 종풍(宗風)을 떨치고 있는 선법(禪法)은, 육조 혜능 선사의 이 두 상수(上首)제자의 법(法)이 면면(綿綿)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하루는 남악 회양 스님이 육조 선사를 친견(親見)하니,
“그대는 어디서 오는고?” 하고 물으셨다.
“숭산(崇山)에서 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하는 물음에 답을 못하고 돌아가서는 6년간 용맹정진 후에 답을 알아 와서,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닦아 증득하는 법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닦아서 얻음은 없지 아니하나 더러운 데 물드는 일은 없습니다.”
“더러운 데 물들지 아니함은 모든 부처님의 살림살이이다. 너도 그러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니 잘 두호(斗護)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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