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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관찰, 날카로운 집중이라야 번뇌가 잘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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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oBama 작성일12-12-12 22:28 조회6,0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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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내용은 2012년 12월 12일 달라스 보현사에서 있었던 수요참선 시간에 지암스님께서 말씀 해주신 내용을 요약한 것 입니다.  제가 옮기는 과정중에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과 본의 아니게 다르게 옮겨 졌을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혹시 내용을 읽어 보시고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지암스님께 질의를 하셔서 잘못된 점을 정정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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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스님 참선곡을 읽다보면 마지막에 "돌장승이 아기나면 그때 말할테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 돌장승이 아이를 낳을수 있습니까? 의역을 해서 돌장승이라고 하는데, 경허 큰스님 참선곡 원문(原文)을 보면 돌장승이 아니고 석녀(石女, 돌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도리를 머리로 헤아리시면 안 됩니다. 머리로 헤아려서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으니 석녀도 아이를 낳을수 있음을 믿는다고 하는 얘기는 말이 안되는 일이죠? 돌장승이 아이를 낳는 도리는 우리네가 그 자리에 도달을 해봐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낙처(落處)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참선을 하라고 하신 이유는 해탈(解脫)입니다. 너 자신을 알아서 해탈을 하라는 말씀이셨죠. 우리네 요시절에는 부처님의 정확한 뜻을 가지고 발심(發心)해서 공부하는 사람들보다는 마음의 평화, 안정, 건강을 목적으로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만. 그렇게 해서는 간절함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냥 취미로 잠깐 시간이 날 때 그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방법인거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의도해서 법문하신데로 발심해서 나를 알아, 이놈의 고뇌, 이놈의 물건, 그것을 업(業)이라고도 하고, 생각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물건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이를 마음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정확하게 봐야 됩니다. 아는게 아니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인데, 이렇게 중요하고 좋은 공부를 진지하게 해 볼려는 사람은 드문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사람이 귀하다고 하신것 같습니다. 그럴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게 뭔지, 우리가 관념해 하고 있는 이 '나'라는 실제 정체가 뭔지, 정확하게 견성(見性), 눈으로 그것을 본 사람이 너무 적어서 그래서 사람이 더더욱 귀한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는 시각으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없는것 같은데...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루 일과 24시간중에 단 10분, 15분, 30분이라도 나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무지 꼬투리를 잡아 낼 수 없습니다. 오늘 이만큼 몰입을 했다해도 내일도 그만큼 몰입을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버릇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겁니다. 어떤때는 좀 되는듯 하다가 어떤때는 천리만리 어디론가 내팽겨 쳤는지도 모르고, 내가 뭘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고 현상에 다 팽겨쳐버리고 쫓아 살고 있잖습니까? 그래서는 엄밀하게 참선하는 사람, 선나, 그냥 서양에 들어와 있는 명상(meditaion)을 하는 수준이지 참선하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기회가 되면 대혜종고 선사의 서장(書狀)을 참고를 해서 공부를 해 보십시요. 특히 제가 주창하는 간화선이 좋고, 간화선이 몰입하기도 좋고, 생활에서 수행하기도 좋아서 화두선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드리는 데 동감을 하고 그래 볼까하는 마음이 있으시면, 스님과 무관하게 고우스님의 서장을 꼭 참고를 해 보시길 바랍니다.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처음에 저는 조사스님들의 법문들이 가슴에 와 닿아서 경전에는 별로 매력을 못 느꼈었습니다. 제가 출가할 때 불교성전을 다 봤습니다. 불교성전을 한번에 다 봤습니다. 너무 강렬한 감동을 받아서 불교성전을 3~4일 걸려 다 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일에 내 인생을 걸어야겠다 하고 들어올 때 속가(俗家) 어머님께 불교성전과 단주를 놔두고 편지를 써두고 온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경(經)은 행자때 아함경을 시작으로 봤습니다. 선(禪)을 시작하면서 선사(禪師)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조사들의 법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사들의 법문을 보기 시작하니 경(經)도 시시해 지기 시작해졌습니다. 참 희한하죠? 그것도 잠깐 한 순간이예요. 나중에 보면 조사스님들 그 말씀이 어디에서 나왔냐 하면.. 전부 경전에서 나왔습니다. 전부 다 경전을 선(禪)적으로 응용해서 그대로 다 쓰셨던 거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 통한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부처님은 끊임없이 우리들에 작용하는 기능을  육근육식(六根六識)으로 표현하십니다. 육경계, 십이경계, 십팔경계 이렇게 논합니다.  육근(六根)이라하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입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안이비설신의라 하면, 이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없고, 뜻도 없다는 것 아닙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저 영덕출신 국사(國師)하셨던 나옹선사께서는 십대때에 반야심경을 외우다가 나는 눈, 귀, 코, 혀, 몸, 뜻이 다 있는데 어째서 이를 없다 하는지 은사스님께 질문을 했답니다. 어째서 없다고 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진지하게 그런 의문을 가져보시나요? 반야심경을 외우실때 왜 다 없다고 하는지..?  하다못해, 나중에 반야심경에서 없는 그것도 없다하고, 얻을것도 없다 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그럴까요?  그렇게 스스로 참구하는 마음을 내야지 참선이 되는 겁니다. 그냥 남이 설명한 것을 듣고 이해를 하고 넘어가다보면 그것을 씨앗으로 해서 언젠가는 꽃은 피겠지만, 지금 당장 내가 진리를 맛 볼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진리를 맛 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육근(六根)과 그를 통해서 갖게 되는 알음앓이인 육식(六識) 그 뿌리를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황야나 광야를 달려가는 지친 나그네 입니다. 광야 중간에서 배고픔에 쩔은 성난 사자를 만났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자에게 잡혀 먹히겠죠? 안 잡아 먹힐려고 죽으라고 도망을 가고, 사자는 잡아 먹을려고 열심히 쫓아오겠죠? 나그네가 도망을 가다가 우거진 나무 한그루를 만나고, 나무 밑에 있는 우물을 보게 됩니다. 나무위를 올라 가자니 너무 다급해서, 나무에서 가지 하나가 우물 안으로 늘어져 있는걸 보고, 다급해서 그 나뭇가지를 붙자고 우물 안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그 우물은 물이 마른 상태입니다. 우물 밑에 도착하면 안전하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밑을 보니 밑에서 독사(毒蛇) 네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혀를 낼름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물 밑바닥을 내려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돌틈 사이에서 흰쥐 한마리와 검은쥐 한마리가 나와서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 나그네는 어떻게 해야 그 위급한 상황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까요?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면 독사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테고, 우물밖으로 나가자니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될테고, 가만히 있자면 나뭇가지가 잘려서 우물 바닥으로 떨어질테고. 이 난감하고 기가막힌 차에 이마에 뭐가 뚝뚝 떨어져서 흘러 내리는 겁니다. 혀를 내밀어 먹어보니 달달한 꿀입니다. 나뭇가지 위에 있던 벌집안에 꿀이 넘쳐서 흘러 내리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것을 핥아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습니다. 배도 고프고 지쳐 있는데 달달한게 내 입안으로 들어오니, 우물밖에 있는 사자와, 우물 바닥에 있는 네마리의 독사와, 나뭇가지를 갉어먹고 있는 흰쥐, 검은쥐도 다 잊어버리고 흘러내린 꿀만 탐닉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뭐가 생각나세요? 이게 바로 안수등정(安樹藤井) 공안(公案)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그네가 살아 나갈 수 있을까요? 그게 화두(話頭)예요. 우리 자신을 순간 돌아볼까요?  내가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황량하고 광막한데를 걸어가고 있어요.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냥 걸어가는 겁니다. 탐욕이라는 그 무시무시한 짐승이 끊임없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를 않습니다. 그 오욕(五慾)을 탐하는 그 마음이 기가막히지 않습니까? 그것을 피해 볼려고, 중이 되기도 하고 이 불법을 만나기도 해보고, 혹은 본인들이 추구하는 다른 종교 아니면 철학을 선택을 해 봤음에도 세월은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낮과 밤은 계속 번갈아 가면서 흘려가면서 생명의 줄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밑에 독사 네마리는 지수화풍(地水火風, 흙, 물, 불, 바람)을 말하는 겁니다. 독사가 위험한 건 다 아시죠? 그러면, 왜 지수화풍 4대요소가 위험한지 아시나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4대 요소를 지수화풍으로 봅니다. 크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럼 왜 지수화풍을 독사(毒蛇)에 비유를 했을까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이 균형을 잃으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몸의 60~70퍼센트 정도를 물(水)이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 물이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적게 되면 병이 나게 됩니다. 호흡(風)을 잘 못하거나 너무 많이 하게 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체온(火)은 어느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체온이 너무 내려가면 저체온증으로, 반대로 너무 올라가면 고열로 문제가 됩니다. 결국은 그게 우리들의 목숨이라는 것은 지수화풍의 균형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만 균형을 잃어도 우리몸은 병이 들고, 심하면 생명을 잃게 되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지수화풍을 위험한 독사로 비유를 하셨던 겁니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지수화풍의 균형에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몸 자체가 위험한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거기다가 가만 있어도 밤낮이 계속 바뀌면서 우리 생명은 자꾸 단축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꿀은 무엇을 비유한 것 일까요? 꿀은 쾌락(오욕낙, 五慾樂: 색욕, 식욕, 수면욕, 탐욕, 명예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좋다고 계속 탐닉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우리를 계속 갈애(渴愛)하게 하는 정체잖아요. 계속 맛있다고 더 먹고자 하고 있잖습니까?  자각도 못하고 오욕낙에 충족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동도 하고 스포츠도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근데 사는 방법이 있으니 그 화두가 나왔겠죠? 어떻게 해야 그 나그네가 살아 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위험으로부터 우리가 해탈을 할 수 있을까요? 사대요소로부터도 해탈하고, 속절없이 가고 있는 밤낮 세월로부터도 해탈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을 알려고 하면 보통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남의 지식, 지혜로는 안 되는겁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상 존재한 많은 지혜를 표방한 철학이 좀 있습니까?  그 무수한 지적인 철학이 모든 문제를 이미 해결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잖아요? 왜 그럴까요? 작은 지혜로는 못하고, 큰 지혜를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큰 지혜를 가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순간 몰입이라도 온전히 해야 합니다. 제가 머리를 삭뚝 끊어내야 한다고 하잖아요. 취모리(吹毛利)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참선하는 어른들이 많이 쓰던 말입니다. 취모리란 칼인데요. 우리 번뇌/욕망을 잘라내는 상징적으로 도끼나 칼 이런 비유를 많이들 쓰시곤 하셨습니다. 보통 도끼도 아니고 금강도끼나 취모리 같은 비유를 많이 드셨습니다. 취모리란 칼을 세워놓고 우리네 머릿카락 하나를 후하고 불면 반으로 잘릴만큼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을 말합니다. 그 정도 날카로운 관찰, 날카로운 집중이라야 번뇌가 잘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충 생각 쫒아가면서 대충 잠을 수용하면 그 번뇌가 잘릴 일이 없겠죠? 제가 이번 안거중에 여러분이 다 어떤식으로던 본인 힘으로 '적어도 요만큼은 확연하구나' 하는 체험을 하길 바란다고 이번 동안거 결제때 말씀 드렸잖아요. 이 정보가 넘처나는 시대이다보니, 여러분한테 선지식이나 내가 원하면 내가 공부할 수 있는 법문을 마음껏 들을수 있을거란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한에는 진도가 별로 나지 않을겁니다. 여러분 앞에 육성을 가지고 이런 얘기를 해줄수 있는 선지식, 물론 모든 스님들이 이런 얘기를 해 주실수는 있어요. 어떤 스님들의 법문을 언제든지 쉽게 들을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한은 여러분 공부는 자꾸 미루어지고 더디어 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현재, 이 순간에 내 앞에 있는 대상, 내 앞에 있는 이 공부얘기를 하는 도반, 공부 얘기를 하는 선지식을 오롯히 온전히 듣고 그대로 해보셔야 합니다. 이번 시간에 그렇게 몰입을... 호흡하시는 분들은 다른 망령하지 마시고, 단지 호흡만 보세요. 나중엔 수 세는것도 잊어버리고 호흡 그차체에만 들어가 있게 그렇게 해 보죠. 각자 돌아않아서 정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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