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9, 제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 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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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9, 제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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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8-01-08 16:35 조회8,07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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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왕만한 칠보무더기를 어떤 사람이 가져다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이나 그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고 다른 이를 위해 해설해 준다면, 앞의 복덕으로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떤 양의 헤아림이나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제24분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갖길 원하는 유루(有漏)의 복덕과 불교 수행자들의 보리도인 깨달음의 지혜, 즉 무루(無漏) 복덕이 어떻게 다른지를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 사람들은 누구나 복된 삶을 희구(希求)합니다. 어떤 삶이 복된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려논 동양적 사고의 대표적 출처를 찾아보면,  유교(儒敎)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과 ‘통속편(通俗編)’에 오복(五福)으로 정리된 내용이 있는데, 먼저 ‘홍범편(洪範篇)’에는 1) 오래 사는 것(壽),  2)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富),  3) 건강하게 사는 것(康寧),  4)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것(攸好德),  5) 천수를 다한 후 편안하게 죽는 것(考終命)등의 다섯 가지 복을 말해 놓았고, 다음 ‘통속편(通俗編)’에는 1) 오래 사는 것(壽),  2)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  3) 귀하게 사는 것(貴),  4) 건강하게 사는 것(康寧),  5) 자손을 많이 두는 것(子孫衆多)등을 다섯 가지 복이라고 했고, 동서양을 떠나 인생이 이와 같으면 더할나위 없는 복된 삶으로 여겨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귀하고 풍족하고 무병장수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덕을 베풀고, 자손이 번창한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복덕(福德)을 선한 행위(善業)의 좋은 과보(果報)로 봅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그 선행의 결과로 복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분명 나쁜 일을 계속 하는데도 잘 나가고 잘만 사는 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공식처럼 간단치 않은 인과관계의 복선과 나타나는 결과의 변수의 수를 다 알고 다 보는 천안통과 숙명통이 열리지 않고서는 짐작조차 쉽지 않은, 쉽게 말해 인과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오해입니다.

나쁜 일을 계속하는데도 그가 잘 사는 듯 보이는 것은 현상의 인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그가 잘 사는 듯 보이는 것은 먼 옛날의 선행의 결과가 현재의 기회를 타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현재의 악행에 대한 과보는 과거의 복덕이 다하면, 때를 만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악행에 대한 결과는 그 과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언젠가는 받게 되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누누히 고구정녕 말씀하셨지요. 인과(인연과보)에 대한 이해와 해결은 구경의 깨달음에 가서야 완전하게 그 의혹이 끝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궁극적 지향점을 복덕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인연따라 변화하는 것으로는, 결코 영원히 생사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그러므로 영원히 평안에 도달할 수도 없는 인과의 이치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록 가르침 가운데 복덕을 지어(作福德) 복덕을 베풀라(施福德)는 말씀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즉 어떤 보상이나 명예 등을 바라지 않는 베풂을 통해 보리도(구경의깨달음의道)의 공덕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기도의식과 발원문 끝에, 항상 "보리도와 보살도로 회향한다"는 대목을 꼭 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행하는 일체 공덕이 다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추진력, 에너지로 쓰여야 합니다.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공덕 문답에 관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고, 저도 법문과 강의시간에 많이 다루었습니다. 이미 그 때 유루와 무루의 공덕에 대한 이해가 완료된 법우님들께서는, 이제 이런 위의 설명과 아래 설명이 다 사족으로 느껴지실거라 봅니다만, 어쩌다 인연 닿아 이 방에 들어 오신 귀한 손님들을 위한 애정을 이어갈까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반야)란 어떤 것인가? 흔히 세간에서는 지식이 풍부거나 삶의 다양한 경험과 연륜이 많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도들 하는데, 이 경우의 지혜는 불교에서 말하는 반야지혜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세간의 지혜와 인연연기(空, 3법인, 4성제, 12연기법, 실상)를 직관하는 지혜인 반야를 구분하실줄 아시라고 반복어인 반야지혜라 강조하는 편입니다.

 

만약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면서도 깨닫지 못한 이가 있다면, 기억력이나 노력이 남다르다고 할 순 있겠지만 지혜(반야)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또한 팔만대장경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리한 사람인 건 분명하나,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어리석은 이는 부처님 말씀도 시비분별의 대상으로 삼지만, 지혜로운 이는 모든 것을 방편으로 삼아 자신과 남을 같이 평안에 들게 합니다. 지식은 밖으로부터 받아들여 인식 세계에 채운 것이지만, 지혜는 텅 빈 마음에서 필요할 때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지혜는 중도(中道)를 깨닫게 하고, 중도로써 자비를 펴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그 무엇에 걸리거나 정체되는 것은 결코 반야지혜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문 때마다, 불교의 지혜(반야)란, 입체적으로 투명하게 보고 아는 눈이라 설명드리는 것입니다.

 

쓸수록 줄어드는 그릇의 물과 같은 것이 복덕이라면(물론, 잘 쓰면서 잘 채워도 넣어 부지런히 관리를 잘하는 중생살이도 있습니다만,,,그것이 끝내 생노병사의 苦를 해방시키지는 못하지요) 끝없이 솟는 샘물과 같은 것이 반야(금강)의 지혜입니다.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댓글목록

보현사님의 댓글

보현사 작성일

자현 아이피 76.184.103.181 작성일 18-01-08 14:15 복과 지혜를 비교할 수는 없다.그러나 복을, 지혜를 얻는 깨달음을 얻는 바라밀로 바꿀 수 있다면 ....쓰는 재미에 빠지지 안도록 금강반야바라밀경에 응여소교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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