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7, 착각과 오해와 집착이 끝난 자리:존재와 현상의 실상을 깨달으면(원각경 중)-숙제 > 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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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7, 착각과 오해와 집착이 끝난 자리:존재와 현상의 실상을 깨달으면(원각경 중)-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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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8-08-06 16:25 조회4,1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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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보고(見) 듣고(聞) 지각(知覺)하는 상태가 늘 착각과 오해의 연속입니다. 

그런 고정 관념, 생각들이 얼룩과 흔적같은 과거의 기억과 그것에 바탕한 욕구와 바램과 두려움등이 합쳐져 미래를 만들지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은 착각과 오해와 집착이란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그림자입니다.


탐[貪-5욕欲 : 성욕(색욕),식욕,물욕(재욕),수면욕,명예욕)]

진[嗔-짜증,화,시기,질투,교만]

치[痴-미혹, 어리석음]  

위 3독(毒)은 중생의 고질적 병으로, 욕계중생으로 하여금 5욕(欲) 7정(情-①기쁨,②분노,③슬픔,④즐거움,⑤사랑,⑥미움,⑦바램)의 그물에 걸려 얽매이게 합니다.


그러니까 중생은, 전도몽상(轉到夢想)의 존재, 즉 허망하고 불안전하고 불안정한 것을 안전하고 안정한 것으로, 허망하고 허황한 것을 실다운 것으로 거꾸로 뒤바꿔 생각하는 착각과 오해, 집착의 몽환 속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이 같이 공부하는 <원각경 보안보살장>은, 어떻게 해야 우리들이 착각과 오해 집착에서 깨어나고, 허망하고 불안정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실답고 안전하고 안정한 삶을 누릴수 있는지를 부처님께 여쭈었고, 부처님께서는 깊은 관찰과 사유(=궁구窮究=참선參禪)라는 훌륭한 방법을 알려 주시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해 깨달은 착각과 오해 집착을 벗어난 자리, 그 상태를 설명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먼저, 우리 모든 존재들이 집착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나'인 몸(身)을 관찰하고 궁구해보니, 4대[大-흙기운(地) 물기운(水) 불기운(火) 바람기운(風)]요소로 이루어져 끊임없이 생멸(生滅-생겨나고 소멸되는)의 모습으로 인연연기(因緣緣起)하는 꿈(夢),허깨비(幻), 거품(泡), 그림자(影)에 불과하고,


또한 '나'라고 이름하는 마음(心)이란 것은, 4대의 기능하는 근간인 6근[根or門:눈 귀 코 혀 몸 머리(인식정보)]이, 그 바깥 대상 6진[塵-색 소리 향 맛 촉감 경계or현상]을 만났을때(觸), ①시각 ②청각 ③후각 ④미각 ⑤촉각 ⑥지각의 각종 알음알이(識)가 형성되는데, 그것을 일러 마음이라 칭하며,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고 오해하며 집착하여, 두려움과 불안과 갈애의 苦고(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그 예로, 무색의 크리스탈에 빛을 비추이면 오색이 나타나는 것을, 어리석은 이가 유리에 실제로 오색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비유하셨지요.

 

지혜의 등불(직관&통찰=참선)로 단번에 실상을 환히 깨달을 수 있음을, 캄캄한 방에 횃불을 밝혔을 때 한꺼번에 온 방이 환히 밝아지는 것과 같이, 오해하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어리석음의 무명이 해결됨도 그와 같다고 명쾌하게 비유해 놓으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대승불교의 불자들이 수행하는(=道닦는=공덕닦는=원각圓覺=붓다로 사는!)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합시다.

 

각자 스스로를 살펴보아, 그 무엇이든, 흔쾌히! 기꺼이! 흔연히! 행하는 바를 드러내어 체크 해보시기 바랍니다.

 

# 6바라밀 중, 그 첫째 덕목이면서 낱낱 바라밀을 포섭하고 또한 전체가 되는布施보시 에는

①財施재시 - 나눔,

②法施법시 = Darma = 이치,진리 - 智慧지혜 나눔,

③無畏施외시 - 두려움과 불안함을 없애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요.

종국에 가장 수승한 무외시는 두려움이나 불안함의 근본 뿌리를 해결함이니, 갖가지 종류의 중생들의 苦厄고액을, 가지가지 방편으로 해결해 주시는 불보살님의 대자대비의 행일 것입니다만, 四事供養物4사공양물(①옷②음식③거처④약)이 되는 물건이나 재화로 돕거나, 타인의 마음을 공감, 위로, 응원, 격려와 같은 덕담으로서 좋은 마음으로 나와 가족, 이웃과 세상을 긍정적이고 시원하고 아름답게 장엄하는 불국정토의 불사를 이루는 자기 자신을 비춰 보기 위함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종교인으로 살고, 불자로 살고, 내인생의 찬란한 주인공으로 사는 일을 얼마나 실답게, 충만하게 영위하는지를 비춰보자는 취지이니, 진지하게 살펴 비춰 보시기 바랍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지선행: 대승불교의 여섯 가지 실천 수행 덕목인 육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로 이중 기꺼이 행하는 바라밀이 무엇일까 사유해 봅니다. 부처님께 귀의 하기 전에는 나에 대한 망상과 착각이 치성 했기에 나눔, 참고 인내하기, 규율이나 법규를 지킴에 다른이들 보다 좀 더 높은 점수를 스스로에게 주었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배우고 알아채기와 깨어 있기 수행을 통해 나에 대해 관찰하면서 진정한 육바라밀을 실천한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착한병에 걸려 내가 나를 평가하고 진단하기 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잣대에 늘 영향을 받아 왔던 나는 좋은사람, 착한사람, 반듯한 사람이란 타이틀에 지나치게 집착 했었습니다. 해서 내가 행했던 모든 행위나 행동등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들의 기대나 기준에 의지해서 행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시를 행하면서 조건없는 자비심으로 내가 한다는 생각 조차 없이 해야 하는데 내 밑 바닥에는 늘 나의 선함을 증명하기 위해 했었고, 지계 또한 예를 잘 갖추고 도덕적 으로 바른 삶을 실천하는 것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했고, 인욕도 참고 인내하는 가운데 분노가 내 안에서 늘 차 올라와 흔들리는 마음으로 억지로 참고 용서가 아닌 두고 보자 란 마음으로 참아 냈었습니다.

 

실다운 바라밀 수행이 아닌 업보만 쌓는 역 수행을 해 왔던 나의 업을 밖으로 향해 있던 관심과 의식들을 내 안으로 돌려 나를 관찰하고 나를 바로 보고 알아채기 수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정법을 만나고 실상과 이치와 교리를 배우며 육바라밀의 의미와 참뜻을 배운 지금은 예전과 같은 어리석은 일은 더이상 하지 않지만 아직 실다운 바라밀을 기꺼이 행한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수 없음이 부끄럽습니다.

 

다만 약간의 변화라면 예전에는 내것을 나누고 베푼다는 만족감에 빠져 보시를 했다면 지금은 나누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리로 돌리거나 함께 공유한다는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보여 주고 증명하기 위해 바른 삶에 집착 했다면 지금은 나의 선업과 더불어 다른이의 선업을 위해 바르게 행동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억지로 참는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고통의 원인이나 성냄의 근원을 되돌아 보려 노력하는 중 입니다.

 

많이 부족하고 한참 모자라지만 늘 마음만은 용맹 정진 하여 물러서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되세기며, 마음을 고요히 하여 참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중 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의 하나 하나의 노력들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고 수행을 완성하여 반야를 성취하길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의 육바라밀을 올바르게 성취하는 것이 보리심과 자비심의 완성요인이라 하셨으며 육바라밀의 방편을 닦아야 일체의 지혜가 완성된다 하셨습니다. 보시,지계,인욕은 타인을 위한 이타의 생활인 자비심의 실천이고 정진· 선정· 지혜는 자신을 위한 자리의 생활로 보리심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육바라밀중 어느 한쪽 으로만 치우쳐 수행할 것이 아니라 골고루 균형을 이루어 수행해야 하겠다고 다시 한번 이 숙제를 통해 다짐해 봅니다.

 

만성월: 육바라밀은 보살의 실천 덕목으로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기본이라 할수있습니다. 하지만 숙제를 받고 일주일 내내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고 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육바라밀 수행을 잘하고 살아왔는지를 관찰해보았지만 육바라밀 수행 중 내 자신에게 합격점을 줄수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 기꺼이란 말에 걸리는군요.

 

과연 내가 남을 위해 보시할 때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 보시를 하였었던 적이 있었는지 자문해 보지만 그렇지 못하였었습니다. 또한 내 자신이 그래도 참을성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질문에는 자신있게 "예"라고 할 것이 없네요. 속에서 화가 나고 열불이 나기도 하지만 참아야지 하고 참았지만 인욕과는 거리가 먼 기꺼이 마음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인 행위(지계)또한 수계를 받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애를 썼지만 그리 후한 점수를 줄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진 또한 꾸준히 노력하고 부지런히 수행하였지만 내 주변의 안위만을 위한 기도 정진이었지 남을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했었던 같아요.

 

지혜를 닦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수행 또한 온갖 망상과 팔만사천가지 번뇌로 뒤덮여 허영심과 분별심으로 놀아나며 버리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에서 열가지 생각해보고 짚어보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실천함이 없이 망상덩어리만 안고 살아왔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가지씩 차근차근 실천항목으로 공부삼아 정진하도록 마음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관음성: 내가 닦는 보살도중에 기꺼이 행하는 육바라밀이 무엇이 있을까? 막상 글을 올리려하니 무엇하나 자신있게 쓸수가 업었습니다. 그저 매일아침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제불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존법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현성승 시작으로 자비도량참법을 독송하고 저의가족을 비롯하여 시방법계 일체중생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과 행복속에 살아가기를 축원해봅니다.

 또한 저의 가족과 인연이 있거나 없거나 시방법계 일체 떠도는 유주무주 영혼 애혼 고혼들이 불보살님 가피아래 원한과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열반하기를 축원하며 회향할 뿐입니다. 앞으로 좀더 정진하여 나가겠습니다.

 

운오도: 평상시 저는 관찰한다라는 언어적 표현에 큰 의미를 둔적이 없었습니다. 좀 세세하게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본다라는 느낌이 강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수준정도?

다른 언어에 비해 좀 점잖게 사물에 집중하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 얼마전부터 시작한 참선을 기점으로 관찰하다라는 그 느낌적인 느낌이 상당히 어려워 쩔쩔매고 있습니다.


전 지금 하루에도 몇번씩 저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냥 바쁜 일상에 아무 느낌없이 흘러가면서 사는게 최고로 편한 삶이라 생각했었던게 엊그제인데...그런 저를 관찰하면서 진짜로 찰나지만 집중이라는걸 하는거 같습니다. 관찰에는 제 주관이나 객관이 개입되면 그 관찰을 쉽게 놓치게되고 그저 생각으로 그치고 마는거 같습니다. 아직 관찰 수준이 아주 찰나에 미치고 있어서 제가 제 생활속의 육바라밀을 관찰하기는 했나싶지만..ㅎㅎ

 

관찰을 위해서는 인욕!! 이것이 필수인지라...ㅎ 정말 부끄러운 인욕이지만 저 나름대로는 아끼지않고..그래 조금이라도 해보자 하는맘을 내었습니다. 아들들이 아웅다웅할때  이번 일주일동안엔 내가 내 불편함때문에 소리를 지르나 아님 저녀석들이 안타까워서 소리지르나 관찰했더니...ㅎ 아직은 전자가 우선이고 후자는 뒷후보입니다.

 

이렇듯...저는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관찰이 없었기에 내가 맞다는 생각,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잘하는 일, 못하는 일 등으로 저를 맞추고 제 주관이 주가 되는 생활을 했었고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육바라밀에 대한 숙제를 하는 저를 관찰해보더라도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이구..내가 무슨 보시를 행하나.. 또는 내가 무슨 인욕을 하나 ...나는 부처님 오계를 지키기나 하나? 등등... 이번 일요법문에 스님께서 소승에서의 삼보와 대승적  삼보를 설명해주셨을때...아 그렇구나 그렇지 하는 저를 관찰했습니다. 내안의 불성을 알아 지혜로 회향하는 삼보. 아직은 제 머리속 생각으로 내는 지혜이지만 우리가 행하는 육바라밀이 궁극으로는 지혜의 회향이기에... 아주 작은 생활속 관찰로 시작된 거리낌 없는 행동 하나하나가 궁극에 가서 부처자리가 될거라 생각됩니다.

 

저의 일주일간의 조그만 관찰로 본 저의 아낌없는 육바라밀은 법을 들을때  기뻐하며 내 가까운 이들이(ㅎ 아직까지는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들이 식구들입니다) 이 법을 듣고 기뻐하면 좋겠다이며 절을 할때 아낌없는 마음이 나오며 소리 소문없이 보시를 행하시는 우리 법우님들 뵈면 칭찬의 마음이 아낌없고 저도 행해야하겠단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런 저를 관찰해보면 절에 올때가 제일 즐겁고 뭐든 기꺼이 하려는거 같습니다. 사실 안밖이 따로 없이 육바라밀을 행해야하는데 이제 겨우 시작한 관찰력으로는 이런 청정도량에서만 쉽게 아낌없는 맘을 내는거 같습니다. 아직 저의 관찰은 제 행동을 뒤돌아보는 수준이고 청정하게 보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정진: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계. 육바라밀을 기꺼이 행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현대문명 사회에서, 부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까지도, 저마다 내면의 불성을 드래내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관찰하라 하셨는데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일상적인 행동이 나와 다르지 않음이 느껴집니다. 집 근처의 주유소에서 뒷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문을 잡아주는 보시행위, 계산대 앞에서 차래를 기다리는 지계 인욕 등의 바라밀은 종교를 구분하지 않고 늘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은사람은 (나도포함 ㅎ)모두가 깨어있습니다. 그들이 부처님의 이름을 모른다 하여 깨어있지 않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나와 도반들이 하고있는 이 숙제 또한 지혜를 닦는 바라밀일 것 입니다. 결국은 그때그때 행해지는 모든 행동이 육바라밀 아닌게 없는것 같습니다. 육바라밀이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도 스칩니다. 그 표현이 불교의 것일뿐...

 

나를 관찰하라 말씀하셨는데, 안과 밖의 구분없는 가르침 또한 주셨기에 불면의 밤과 바꿔버린 망상을 슬쩍적어놓고도 부담이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콕 찝어서 올려야하는 성의를 보이시라면...기꺼이.. 특별히..  어젯밤  머리에 쥐날정도로 육바라밀을 향한 정진?고민?) 내보이려 하면 할수록 부족함만 드러나니.. 거꾸로가는 바퀴가 따로 없습니다. 깨어서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

 

홍원: 이번 숙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대승불교의 주 핵심 실천과제라 할 수 있는 육바라밀임에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지금 해나가는 방식이 어느정도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근원적으로 나의 수행방법이 잘못되어 왔음을 느끼고 이러한 잘못된 알음알이가 내 스스로의 수행과 이타행을 멀리한 교리적인 것에 국한되다 보니 속 빈 강정으로 생각이 들었습 니다.

 

누가 무슨 질문을 한다해도 속시원히 있는 그대로를 말하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 인식된 상식에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의 생각을, 소견을 주입하다 보니 답을할 때마다 놀랍게도 잘못된 답을 말하고 있는 나를 보며 보다 근원적으로 바꾸려 합니다. 저는 그동안 알음알이가 치성한 나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내 안으로 돌리고 수행하는 공덕을 밖으로 회향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진"에 주안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르고 나태해진 마음을 끝없는 정진을 통해 나 자신의 교만스럽고 증상만자의 마음을 굴복시키고 하심함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로 인해 나머지 다섯가지 실천 덕목은 보다 더 탄력을 받지 않을런지요 _()_

 

성월심: 육바라밀중 내가 기꺼이 행하는 것은?

● 육바라밀중 보시 - 나의 호흡을 관해본다. 늘 그렇듯이 들숨에 비해 날숨이 상대적으로 적다. 어느 순간 부터는 저절로 같아 지지만. 자연적인 호흡을 통해서도 내어 주는것 보다는 집어 넣는것이 많은 것을 보면서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데도 기꺼이 날숨을 편히 길게 하지 못하는 나의 인색함을 보며 아울러 나의 욕심과 부정직함도 보게 됩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과 정성을 다하면 보답하듯 잘 자라 줍니다. 며칠 정신 없이 지내다 물을 주지 못하여 축 늘어져 헐떡거리고 있습니다. 꽃과 나무가 나와 같은 뿌리인데 그들의 생명줄인 물도 기꺼이 주지 못하는 인색함을 보면서 때론 미생물의 생명도 존중함을 잊곤 합니다.

 

● 육바라밀중 정진 - 나는 요사이 새벽예불시 염불이나 지장 보살 정진중 나의 모습을 관찰 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순간적인 졸음으로 한 소절 또는 한 단락을 놓칠때도 있고, 때로는 염불이나 정진 중, 힘에 부칠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망상을 떨치지 못하고 따라 갈때도 있고, 드물게는 발원문이 남았나 하며 순간적인 지리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온 도량을 깨우듯, 불.보살님들 들으시라 목청 높여 또박또박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칠정례를 올릴때, 이산혜연선사의 발원문을 올릴때 지극정성을 다합니다. 참으로 기꺼이 혼신을 다해서 합니다. 새벽기도 도반님들도 다 같은 마음이라 생각 됩니다.

 

근간에 계속하여 “부처님 생애” 를 혜국스님이 강의 하신 씨디를 듣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지금도 늘 (염불이면 염불, 참선이면 참선, 법문이면 법문) 매사에 최선을 다 하신 다는 말씀이 가장 인상 적이 였습니다. 지암스님께서도 늘 매사에 집중하라. 놓치지 마라. 깨어 있으라. 말씀 하십니다. 다 같은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육바라밀의 어느것도 흔쾌히 하는 것이 없지만 순간순간 제 자신에게나 상대에게 집중하려 합니다. 그저 할 뿐 이며 꾸준히 성실히 하려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

 

보장화: 저는 6바라밀의 첫번째 보시바라밀을 위주로 살펴본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시바라밀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적극적인 자비를 주고 받을수있는 덕목이며 또한 재보시는 복의, 법보시는 혜의, 무외시는 덕의 자량을 쌓는데 최고의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나의 보시바라밀의 현주소는? 고정된 주소를 찾을 수가 없네요.가끔 맘이 흔쾌히 하는 보시가 있긴합니다만, 가만 들여다보면 복덕혜의 자량이 된다는 것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내가 자발적으로 할때 흔연한 맘을 낼수있는것 같습니다.

 

관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과 같이 행이 곧 6바라밀이고 자체가 6바라밀인 그런 경지는 원각의 자리를 보지 않고서는 전도몽상이 철저히 바로잡히지 못해서 보시행을 보시바라밀로 승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음알이로라도 보시바라밀의 이익을 알고 있으므로 희망은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열심히 실천 노력해서 혹 이번생에 깨닫지 못하더라도 다음생에 수월히 깨닫기위해 복덕혜의 자량을 열심히 쌓아서 돌아가겠습니다. 남을 이롭게한 보시행이 내 자량으로 쌓여 나에게 큰이익을 주네요!!!

 

덕현: 육바라밀 중 바라는바 없이 흔쾌히 하는 행동에 대해 생각할수록 너무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저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무언가를 해줄때인데 그것도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저의 착각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보현사 게시판에 올리신 스님의 글을 보면서 크리스탈같은 참나는 못보면서 육근과 육진, 오욕칠정에 프리즘된 색깔들을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같습니다. 항상 모든 일에 속지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련화: 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바른 견해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성, 나침반이라 생각하는 정견..정사유, 정어,정명.. 삶에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첫 단추를 잘 끼우려 애를 쓰고 살아왔는데 숙제를 받고 사유해 보니 아직도 팔정도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최대한 깨어있기를 노력하지만은 정신의 또렷함을 잃고 화와 집착이 일어나면 언제나 이게 아닌데 ...하거든요. 알음알이가 아닌 행주좌와 어느때나 내 삶에 자리 잡고 녹아내리도록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

 

남곡: 내가 인식하면서 기꺼이 하려고 노력하는 육바라밀은 나의 삼독심을 나의 자성불과 법신불께 회향하려고 하는 보시 바라밀인것 같습니다. 다른 물질적이고 상대적인 바라밀은 아직 욕망과 집착의 관성이 남아 있어서 바라밀이라 이름을 붙일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나오는 번뇌 망상이지만 인욕하고 정진하며 선정에 들고 그힘을 바탕으로 반야의 지혜를 구족하여 육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

 

자연성: 스님을 만나면서 알게 된 육바라밀...

처음엔 육바라밀이란 단어도 낯설었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하며 한 단어씩 외우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나만 좋으면 좋은~ 소승적인 마인드로 꽉차서 스님께서 대승 대승 ~보살도를 노래하셔도 나하고는 거리가 먼~ 맘 좋은 보살님들이 닦아나가는 길로 여기고 허투루 여겼었습니다.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스님밑에서 되든 안되든 수행하다보니 어느새 육바라밀을 골고루 하고 있었습니다. 육바라밀 수행을 조금씩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할 때쯤 스님께서 또 다른 막대기로 툭 치십니다. 흔쾌히, 기꺼이...? 헉... 내가 흔쾌이 하고 있는 육바라밀이 뭐가 있지?? 일주일동안 머리를 쥐어짜도 기꺼이보다는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이 하니까...주인공이 아닌 종으로 행하는 일들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도 쥐어짜서 일상생활에서 한 번씩, 가끔씩 기꺼이 행한다고 여기는 일들을 적어봅니다.

 

*우선은 가끔씩 아들한테 부처님가르침을 내가 알고 이해한만큼 설명하고 얘기를 해주려 합니다. 이 좋은 부처님법을 만나서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까이는 가족부터 시작~) 그리고 (일년에 손꼽을 정도) 힘들거나 외로운 분들과 대화를 나눌때 그 분들이 편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말 한마디, 응원해드릴때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예불을 할 때, 부처님, 불보살님, 신중님들께 부처님 가르침을 이 세상에서 만나고 수행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릴때, 기꺼이 할 때가 있으며 자비참법기도를 하면서 책을 읽고 절을 하며 기꺼이 참회를 하고, 참법책 내용에 집중하며 가족, 친척 뿐 아니라 백중위패 모신 분들, 육도중생, 유주무주 모두에게 부처님 법을 들려드릴려고 가끔씩 맘 낼때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 참 나를 알고 싶고, 나의 탐진치 업으로 인해 마음이 일어나고 힘들때 알아차리기, 깨어있기, 참선도 기꺼이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분별을 하고, 좋은 것 싫은 것을 따지고 머리를 굴리고, 책임지기를 싫어하지만, 인욕하고 수행하다보니 그래도 흔쾌히, 기꺼이, 내가 주인공으로 행하는 삶을 예전보다는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정진해 나가 행하는 모든 거에 주인공(수처작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_()_ *

 

               ***** 육바라밀 ******

환한웃음 좋은덕담 나도좋고 너도좋은 보시바라밀

깨어있기 잘만해도 모든오계 지켜지는 지계바라밀

칭찬소리 비방소리 흔들리지 아니하고 인욕바라밀

선한마음 악한마음 일어나도 오직할뿐 정진바라밀

소소영영 지각하는 이게뭔지 궁금할뿐 선정바라밀

사유하고 궁구하니 자연스레 빛이나는 지혜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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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법회 : 매주 일요일 오전 10:30 AM
선방 모임 : 매주 수요일 저녁 7:00 PM
불교 대학 : 매주 화요일 저녁 7:00 PM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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