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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의 아버지 용수의 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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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현사 작성일21-07-14 15:49 조회2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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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龍樹)는 중관(中觀, skt. Madhyamika)을 주창해 대승불교를 확립한 인물이다. 용수는 부처님 가르침인 궁극적 진리를 중도(中道)로 봤으며, 그렇게 중도로 보는 것을 중관(中觀)이라 해서, 중관학(中觀學) 혹은 반야중관학(般若中觀學)이라 한다. 그리고 중관사상이란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송(中頌)>을 중심으로 한 사상으로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용수의 원래 이름은 나가르주나(skt, Nāgārjuna)이나 뜻을 따라 한역되면서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서는 ‘용수(龍樹)’로 불리며, 티베트에서는 ‘Klu Sgrub’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보살’이라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 해서, 여러 생을 거치며 선업을 닦아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부처가 되기 직전의 위대한 신화적 인물에게 붙이는 존칭이지만, 살아있었던 실존인물로 ‘보살’이라는 존칭을 받은 분이 몇 분 있었다. 용수보살, 마명(馬鳴)보살ㆍ무착(無着)보살ㆍ세친(世親)보살 정도로서, 용수는 실존인물이면서 보살로 존칭됐을 만큼 위대한 승려였다.

  용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구마라습이 지은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에 의하면, 용수는 인도 남부 브라만 출신으로 브라만 논사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용수는 당시 불경 기록의 주된 언어였던 빠알리어 대신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총명한 청년으로, 친구 세 명과 몸을 숨기는 둔갑술을 익혀, 왕궁에 들어가 궁중의 미녀들을 범해 임신시켰다고 한다. 이성에 대한 욕망과 쾌락 탓이었다. 왕은 범인을 잡기 위해 땅 위에 고운 모래를 뿌리게 하고, 그들의 발자국이 모래에 새겨지자, 창칼로 공중을 찔렀다. 친구 세 명은 그 자리에서 모두 죽고, 그는 간신히 궁중을 탈출했다. 그 후 용수는 감각적인 쾌락에 회의를 품고, 모든 욕망이 번뇌와 고통의 근원임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했다.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는 선종사의 사자상승의 정법안장 종조의 계보로, 제14대 조사(祖師)라 여긴다.

  출가한 용수는 90일 만에 기존의 불경을 다 외웠다고 한다. 용수가 살던 시대는 이미 상좌부는 없었기에, 부파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에 귀의했다. 스리랑카로 건너간 상좌부 외에 인도의 상좌부는 ‘분별설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가 기원 후 150년경, 용수시대에 이미 소멸되고 없었다.

  용수가 귀의한 곳은 초기 대승불교의 한 분파였는데, 말하자면 공(空)사상을 핵심으로 여기던 초기 중관학파였다. 중관학파의 논사가 된 용수는 어떤 불변의식(分別意識)이 있어 윤회한다는 설일체유부, 독자부, 경량부 등 부파의 아비달마를 공격함과 동시에, 중관학파의 공(空)을 더욱 철학화 하는 작업에 몰두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중송(中頌)>이고, 그 핵심 내용이 팔부중도(八不中道)이다.

  용수는 자기가 접한 소승적 경전과 견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대로 된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러한 것들을 바로 잡고 보완해 거듭 부처님의 참된 바른 법을 널리 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용수는 중관불교의 틀을 확립하고 동시에 대승불교의 논리를 정립했기 때문에 제2의 석가모니 또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따라서 용수를 이해하지 않고는 대승불교를 이해할 수 없고, 대승불교를 이해하려면 먼저 용수를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는 석가모니 이래 출가자 위주의 ‘수행과 해탈 중심의 불교’였던 것을 비판하고 지혜&자비를 모토로 하는 대승불교를 수행하고 가르치고 펼쳤다.

그리하여 용수는 가르침과 계율을 다시 세우고 의복과 의식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기존의 교단과 차별를 두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전설 같은 일화가 전개된다.

  대룡(大龍)보살은 이러한 용수가 아만심(我慢心)에 차 있는 것으로 보고 측은히 여겨 그를 바다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용궁의 칠보로 장식한 창고를 열어 대승의 경전들을 보여줬다. 용수는 이것을 받아 석 달간 읽고 그 뜻을 두루 통달했으며, 특히 <화엄경>에 심취해서 방대한 <화엄경>을 가지고 나와 세상에 펼치고, 이를 축약한 <화엄경 약찬게(略纂偈)>를 지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논쟁과 토론을 통해 많은 왕공과 장자, 브라만들을 불교에 귀의시켰고, 대승의 이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길, 태어남도 없고 죽어감도 없는, 본래 생멸이 없다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런데 소승불교의 한 법사가 용수에게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 용수가 그러함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가?”

  이에 대해 소승법사는 그의 장수(長壽)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자, 용수는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제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매미가 허물을 벗은 듯이 죽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용수가 세상을 떠난 지 백여 년이 지나, 남인도의 여러 나라에서는 그를 위해 사당을 짓고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며 섬겼다.

  그의 저술로는 <중송(中頌)> 외에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이 유명하다. 이 세 문헌을 “삼론(三論)”이라고 부르며, 중국에서 4~5세기에 유행했던 삼론종(三論宗)의 소의논서가 됐다.

  용수가 쓴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대승불교의 불법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논서이다. 불교의 다양한 학술과 설화를 정리한 것은 물론 인도의 사상과 문화도 소상히 밝힌 대작으로 꼽힌다. 본래는 1천여 권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이 한문으로 번역한 100권만 남아 있다. 당시 사상계의 혼돈 속에서 용수가 나타나서 공사상을 통해 사상계의 흐름을 철학적으로 평정하고 불교를 대승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용수는 <중송(中頌)>에서 모든 사물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연기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성(自性)이란 없으며 모든 실체를 공(空)이라고 했다. 자성이란 것은 인과 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항상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고정불변한 실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선 홀로 존재하는 자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의 본질은 「무자성(無自性) - 공(空)」이라고 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최고의 진리(skt. paramārtha-satya, 眞諦, 勝義諦)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서 인간의 사고 내지 인식작용이 미치지 않는 초월적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의 세계, 본질의 세계와 유사하며 세상의 흐름과 무관한 영원한 무루(無漏)의 실체를 말한다.

  이에 비해 덮힌 진리(skt. samvrti-satya, 俗諦, 世俗諦)는 상대적인 진리로 인간적 사유에서 법을 이야기하는데, 플라톤의 현상의 세계, 동굴의 세계와 같다고 학자들은 비유한다.

진제(眞諦)에 의하면, 이 세상의 일체 사물은 생겨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늙고 죽는 것도 모두 거짓된 관념에 불과하다고 했다. 따라서 사물이 생겨나고 멸하며, 인간이 늙어서 죽는 것은 ‘덮힘’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니 이 ‘덮힘’을 제거하면 불생불멸의 무루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용수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덮힘’의 세상으로 환영에 불과하니 눈을 뜨기까지 그것은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의 바다이지만 일단 눈을 떠버리면 고통스럽던 꿈은 이슬과 같이 사라지고 영원한 평안과 해탈 속에 머무르게 된다고 했다.

  용수는 이와 같이 <중송>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을 연기설로서 이론적으로 해명함으로써 대승불교의 철학적 위상을 확립했지만 생생한 깨달음의 실체인 해탈지경을 실체가 없는 관념적인 공으로 바꿔버림으로써 불교를 사실에 관한 법에서 관념이 지배하는 추상적인 법으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실체를 깨달아 증험하지 못한 학자들의 관념적 이론임.)

  *용수는 불교철학사에서도 그렇지만 인도철학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대승불교가 등장하기 이전의 불교, 이른바 소승불교라 알려져 있는 아비달마 불교를 비판한 것은 물론, 인도철학사에 등장하는 상키야 학파, 니야야 학파, 미망사 학파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와 후대에 다른 학파들로부터 혹독하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용수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중론송(中論頌, 산스크리트어 Madhyamaka-karika)---줄여서 ‘중송(中頌)’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름은 <근본중송(根本中頌, Mūla-madhyamaka-kārikā)>이다. 용수가 중관(中觀)에 관해 지은 게송으로 27품 449구(한역445구)로 돼 있다. 이것이 청목(靑目/Piṅgala, 4세기 전반)이 해설한 <중론(中論)> 속에 들어있다. 그래서 중송을 중론이라고 하듯이 중론과 중송을 혼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중송을 해설한 것이 중론이므로 구분돼야 한다. 중송은 용수(龍樹)가 읊은 것이고, 용수의 제자 핑갈라(청목)가 중송을 해설한 것이 중론(中論)이다.

  유명한 ‘귀경게(歸敬偈)’란 바로 중송의 첫머리 서문 격인데, 내용이 ‘팔불(八不)’이라서, 팔부중도(八不中道), 팔부중관(八不中觀), 팔부정관(八不正觀)이라 하기도 한다. 팔부중도의 ‘팔불(八不)’은 아래와 같다.

    • 불생불멸(不生不滅) -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 개별존재의 생겨남과 사라짐에 대한 부정임.

    • 불상부단(不常不斷) -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단절된 것도 아니다. - 존재의 영원함과 단절됨에 대한 부정임.

    • 불일불이(不一不異) -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 존재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부정임.

    • 불래불거(不來不去) -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 존재의 개별 원인과 개별 결과에 대한 부정임.

  또한 용수는 <중송>에서 말했다. “세속 일(세속의 진리)에 의하지 않고는 최고의 진실은 설해지지 않는다. 최고의 진실에 의하지 않고는 열반은 깨달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세속의 일이란 우리들의 일상적 세계요, 소위 언어로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세계다. 사실 불법의 대해(大海)는 이 세속적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불법이라는 대해의 기슭이며 물가인 것이다. 따라서 불법의 대해에 신(信)을 지니고 들어가 실천에 노력하면서 더욱 그 실천을 겸허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어디까지나 집착을 지니지 않고 일체가 공(空)임을 지혜로 깨달을 때에만 그 대해를 건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Mahaprajnaparamita­sastra)---<반야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부류에 속하는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마하반야바라밀경>의 주석서이다. 당시의 여러 사상과 전설, 교단의 규정 등을 해설하고 공의 입장에서 비판했다. 특히 보살의 실천 수행의 길인 6바라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흔히 <지도론(智度論)>, <대론(大論)>, <석론(釋論)> 등으로 약칭되며, 초기대승 교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저서이다.

  현재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전하지 않고, 구마라습(鳩摩羅什)의 한역본만 전한다. 한역본이 100권 정도로 방대한 것이지만 원서는 그 10배나 되는데, 구마라습은 그 중에서 처음의 <대품반야경> 서품에 해당하는 34품만 완역하고, 이하는 초역했다고 한다. 주석서이지만 원시의 불교ㆍ부파불교ㆍ초기 대승불교로부터 인도사상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인용된, 당시로서는 불교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방대한 저서로서 불교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대지도론> 100권을 통해 용수는 그의 사상을 자세히 펼쳤고, <중송>은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여기서 ‘지도(智度)’란 반야바라밀을 뜻한다.

  <대지도론>이 의도하는 바는 <중송>과 마찬가지로 반야공(般若空)사상을 기본입장으로 하면서 <중송>이 부정적 입장을 취한데 비해, 제법실상(諸法實相:모든 현상은 空으로서만 진실한 형태를 취함)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대승보살 실천도의 해명에 힘썼다.

  “불법의 대해(大海)는 신(信)을 능입(能入)으로 하고 지(智)를 능도(能度)로 한다.”고 해서, 불법을 대해에 비유했다. 소소한 지혜나 노력으로 건널 수 있는 작은 냇물이나 강이 아니다. 바다라 했으니까 들어간다(入)했고 건넌다(度)고 했다. 그것이 신(信)에 의해 들어갈 수 있고, 지(智) 즉 반야의 지혜에 의해 건널 수 있다는 말이다.

             


  *십이문론(十二門論)---공에 의해 불교의 근본사상을 서술하고 있다. 409년 구마라습이 한역했다. 12문에 걸쳐 대승불교의 공관을 밝히고, 공에 통달하지 않으면 대승에 통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법의 공(空)을 주장하고 이에 의거해 진속(眞俗) 이제(二諦)의 의의를 밝혔다. 각 문의 첫머리에 하나의 게송을 싣고 그 의의를 밝히는 구성으로 돼 있으며, <중론(中論)>의 입문서가 되는 논서로 간주된다. <중론>ㆍ<백론>과 더불어 삼론종(三論宗)의 소의논서이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화엄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아주 옛날에 성립된 <십지경(十地經)>인 ‘십주품’을 해설한 것으로 35품으로 구성돼 있다. 책 명칭의 십주는 십지(十地)로, 보살이 부처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10단계를 말한다. 그 보살의 수행계위인 십지 중 제1∼2지만을 해설하고 있다. 단순히 해석에만 그치지 않고 게송(偈頌)으로 경의 뜻을 요약해 부연 해설했다. 특히 불교의 가르침을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로 나누어, 염불문을 열어 보인 근거로 삼게 된 논서이다. 이 중에는 믿음을 방편으로 하는 이행도(易行道: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길)인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고 마음에 새기는 길이 설명돼 있는데, 이것은 후대의 정토교(淨土敎)의 근거가 됐다.

모두 17권이며 구마라습이 5세기 초에 한역했다. 산스크리트어본이나 티베트어본은 전하지 않는다. 십지를 모두 설명하지 않아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으나 아미타불 신앙을 설명한 ‘이행품(易行品)’은 용수의 사상과 정토사상을 담고 있어 중요시하게 됐다. 후대에 담란(曇鸞, 476∼542)이 <왕생논주>라는 저서에 쓴 난이이도(難易二道)라는 용어는 이 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회정론(廻諍論)---<중론(中論)>에 나오는 논쟁(論爭)에 관한 글이다. 불교 이외의 여러 학파, 특히 당시의 논리학파의 주장을 공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다. ‘회정론(廻諍論)’이란 실재론자의 비판에 대해 공사상(空思想)을 해명하는 중관론자의 설명이다. 즉, “사물이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공성(空性)의 뜻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다른 것에 의존한 존재에는 본체가 없다.… 그리고 사물이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공성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공이란 바로 연기라는 말이다. 연기를 본 자는 공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사상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런 유형의 여섯 가지 한계를 가진 그릇된 의론이 제시돼 있다.

    ① 만일 모든 것이 공이라면, 당연히 그대의 말도 모든 것 속에 포함돼 있는 것이므로 공이다. 그 공인 것에 의해 무엇인가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부정도 있을 수 없다.

    ② 만일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부정이 있을 수 있다면 그대의 말은 공이 아니어야 한다. 공이 아닌 것이 실지로 있는 것이므로, 그것에 의해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③ 또 모든 것은 공이지만, 그대의 말은 공이 아니므로 부정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대의 말은 모든 것 속에 포함되지 않게 된다. 그 경우에는 ‘모든 것은 공이다’라는 주장은 공이 아닌 말이라고 하는 실례와 서로 어긋나고 만다.

    ④ 그대의 말이 모든 것의 한 부분이고, 또 모든 것이 공이라면 그도 공일 것이다. 공이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부정할 수는 없다.

    ⑤ 또 말이 공이요, 그리고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부정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모든 것은 공이면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승인될 수 없다.

    ⑥ 실례와 자신의 의론이 서로 어긋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해 모든 것은 공이며, 또 작용을 행하지 않는다고 그대가 말한다면, 공인 그대의 말에 의해 모든 것의 본체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또 이같이 그 본체를 부정하는 말이 존재함으로써 어느 것은 공이고, 어느 것은 공이 아니라고 하는 불일치가 따르게 된다. 따라서 그 불일치성에 대해 어느 것은 공이고 어느 것은 공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특별한 이유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그대가 말하는 것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대승이십송론(大乘二十頌論)---공의 입장에서, 세계는 오직 일심(一心)임을 설파하고 있다. 11세기 초 인도 출신의 학승 시호(施護)가 한역했다. 1권으로 된 이 논은 모든 것은 마음의 분별에 의해 생기지만 실지로는 모든 것이 '공(空)'이며 부처님과 중생도 차별이 없다는 것을 설법하고 있다. 공(空)사상과 유심(唯心)사상을 함께 설했다.

종래 용수가 직접 저술했는지를 의심하는 견해가 있었으나 지금은 용수의 저술로 인정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등이 전한다.

  모든 존재는 본래 영구불변의 자성(自性)이 없고 자아(自我)가 없으나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모든 법에는 생함이 있고 자성이 있다고 허망하게 집착해 괴로움을 받게 된다. 중론(中論)과 마찬가지로 연기이므로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한편 이 책에는 공과 함께 유심(唯心)사상도 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용수가 중관(中觀)사상과 함께 유심사상도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하는 문헌이다.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6세기 중엽 남조 진(陳)에서 활약한 인도 출신의 학승 진제(眞諦)가 557∼569년에 한역한 것이 전해진다. 1권 5품으로 구성된 이 논은 부처가 보행왕(寶行王)에게 불교의 요체를 설하며, 수행에 힘쓰는 동시에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교화하는 내용이다. 즉,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불도를 존중히 여기며 깨끗한 공덕을 쌓을 것에 대해 설법하고 있다. 정치에 종사하는 자에게 실천수행의 길을 뚜렷이 보여준다.

 #투씨(Tucci-이탈리안)가 네팔에서 산스크리트로 된 원본을 발견해 1934년 교정본을 출간했다.

#*보리자량론(菩提資糧論)---7세기 초 수(隋)나라시대 인도 출신의 학승 달마급다(達磨汲多, ?~619)가 한역했다. 6권으로 된 이 논은 보살이 깨달음을 얻는 데 필요한 것은 여섯 가지의 완전한 불도인 6바라밀과 방편(方便)ㆍ원(願)ㆍ역(力)ㆍ지(智)의 네 가지 완전한 불도인 4바라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불도를 닦는 것이라는 것을 설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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