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의 향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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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작성일16-10-16 19:40 조회15,0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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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십력 >>
부처님 처럼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부단히 흉내라도 내면서 수행을 하라는 채찍을 주기 위해서 이번 숙제를 내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과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여러 블로그 중에서 저에게 가장 쉽게 이해를 시켜준 내용입니다. 각 항목별로 공부를 하면서 그럼 저는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고 정리 해 보았습니다.
1. 시처(是處)비처(非處)를 아는 지력(智力)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시기, 그 경우를 분별해서 해야하는데 시처((是處)는 그 때 그 일을 하는 것이 적당한 것이고, 비처(非處)는 그 때 그 경우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때 그 경우에 따라 가장 적당한 행동을 분별해 아는 것이 곧 시처와 비처를 아는 지력입니다. 언제 하느냐, 어디서 하느냐, 누구에게 하느냐, 이렇게 세 가지 표준 에 따라 그것이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때와 곳과 상대를 올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시처(是處)비처(非處)를 아는 지력"인데 이런 지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 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늘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실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해 봤습니다. 그런데 건건이 그러고 있다가는 무슨 작은 일 하나도 제때에 제대로 해 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2. 삼세(三世)의 업보(業報)를 아는 지혜의 힘
삼세는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우리들의 평생 동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업보의 업(業)은 자기의 행동이요 그 행동에 의해 얻는 결과가 보(報)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세상에서 한 일에 대해 이 세상에서 받는 그 결과가 업보이고 또는 이 세상에서 하는 일에 대해 미래의 세상에서 받는 결과가 또한 업보입니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 미래와의 관계를 완전히 아는 힘, 그것이 삼세의 업보를 아는 힘입니다. 현재 과거 미래에도 업과 보는 되풀이 됩니다. 삼세의 업보를 안다는 것은 다만 업보뿐만 아니라 그 보를 더욱 좋게 하는 길도 아는 것입니다. 업(業)에 대해 보(報)가 있는데 정보(正報)와 의보(依報)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보란 자기의 몸과 마음, 의보란 자기의 환경, 경우입니다. 전에 한 자기의 업(행동)에 의해 지금의 자기는 어떠한 몸을 가지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또 지금의 자기가 어떠한 경우, 환경에 있는가 하는 것도 역시 과거에 자기가 한 업에 의해 결정됩니다.그것이 정보와 의보입니다. 업보라는 것은 마치 큰 나무가 자꾸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자라면 그 자란 끝이 또 자라고 그 끝이 또 더 자라고 하는 것과 같이 업이 보를 낳고 그 보가 또 업이 되어 다시 새로운 보를 낳고 하여 언제까지나 계속됩니다. 제가 한 일은 제가 다 거둬들여야 하므로 하는 말 하나하나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참 잘 생각해야 하는데 위의 시처비처를 아는 힘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러다가는 날 새는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해서 고민이 됩니다. 걍 봉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3. 모든 선(禪), 해탈(解脫), 삼매(三昧)를 아는 지혜의 힘
선이란 인도말로 선나(禪那), 한문으로 정려(靜慮), 생각을 안정시킨다는 뜻입니다. 해탈이란 번뇌의 속박을 벗는 것입니다. 미혹을 없애고 도를 깨달아서 자재(自在)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매란 인도말로 삼매야의 준말이고,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선, 해탈, 삼매는 한마디로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것"입니다.언제든지 평온한 마음을 터득하는 것이 선, 해탈, 삼매를 아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언행을 삼가고 조용히 생각하고 토론 해 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평온한 마음을 터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해 봤습니다. 제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도 스님과 도반님들께 묻고 묻고 물어가면서 평온한 마음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4. 모든 근기(根機)의 우열(優劣:나음과 못함)을 아는 지혜의 힘
부처님께서 똑같이 가르침을 설하셔도 듣는 사람에 따라 그 얻는 바가 각각 다릅니다. 그 것은 듣는 사람의 근기(가르침을 해득하는 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의 근기를 안다는 것은 부처님이 아닌 이상 좀처럼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근기를 안다는 것은 좀처럼 안된다는데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 생각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하는 습관을 버리고 제 나름 대로 생각하는 상대방의 근기에 맞춰 대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5. 가지가지의 해(解)를 아는 지혜의 힘
가지가지의 해는 가르침을 듣는 사람의 성질과 기질에 따라 그 이해하는 바, 그 집착하는 바가 다름을 말합니다. 듣는 사람의 사정, 환경 등에 따라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아는 것이 가지 가지의 해(解)를 아는 것입니다. 한 말에 대해 들은 사람이 각기 어느 정도 이해했는가를 살펴서 낱낱이 분별해 아는 힘, 이것이 없이는 진정으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지가지 해를 아셔서 듣는 사람의 이해하는 정도를 낱낱이 다 알아 분별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위의 네번째 "근기의 우열을 아는 지혜의 힘"과 이번의 "가지가지의 해를 아는 힘" 의 차이를 잘 분간하지 못하겠습니다. 제 근기가 열해서인 것 것 같습니다.
6. 가지가지의 계(界)를 아는 지혜의 힘
계(界) 란 인과(因果)의 이치에 따른 과보이며 그로 인한 환경과 처지로서 사람들의 신상(身上)입니다. 인간은 환경과 사정이 다 다르므로 그것을 잘 알아주어야 합니다. 특히 이해(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것)관계에 있어서는 그 사람의 처지에 따라 각자가 크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처지를 잘 알아서 그에 알맞게 가르쳐 인도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교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비가 오면 우산장수는 좋아하고 얼음 장수는 싫어합니다. 모든 것이 그 사람의 환경에 따라 좋게도 해석되고 나쁘게도 해석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가지가지 경계를 알지 못하고는 교를 설하지 못합니다. 다 같이 존귀한 말을 말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감탄하고 어떤 사람은 반감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교를 설하는데 이 "가지가지의 계(界)를 아는 지혜의 힘"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또한 저는 위의 네번째 다섯번째 힘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제가 아는 대로 제가 느끼는 대로의 상대방 근기에 맞춰 가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7. 일체에 이르는 길(道)을 아는 지혜의 힘
이르는 바의 길(所至道)이란 현재 하는 일로 인해 그 결과가 어떤데 이르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행동에 의해 앞날의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모든 사람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좀처럼 알지 못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그가 하고 있는 일이 결국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그 결과를 판단해서 아는 힘이 없으면 남을 가르쳐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꼐서는 모든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내다 보시고 일체의 인간을 가르쳐 인도 하십니다.
우매하고 게으른 제가 다른 사람의 길을 알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 하는 일로 인해 저의 미래가 결정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업보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을 믿기에 늘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수행하고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8. 천안(天眼)이 무애(無碍)함을 아는 지혜의 힘
천안이 막힘이 없다는 것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데 있어서 막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인데 번뇌에 가려져 있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미혹으로 가려져 있으면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지혜가 나아가기만 하면 보통 인간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환히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삿된 생각을 버리고 버려서 늘 청정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으로 여기고 참 나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가면서 살겠습니다.
9. 숙명(宿命)이 무루(無漏)함을 아는 지혜의 힘
숙명이란 자기가 전생에서의 한 일에 의해 어떠한 운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왔을 때는 이미 환경이 정해져 있지만 그 환경가운데서라도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가장 좋은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숙명을 아는 것입니다. "무루"란 욕망을 없애는 것입니다. 조그만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사물을 생각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입니다. 완전히 미혹을 없애려면 숙명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또 남에 대해서도 그의 처지를 살펴주는 것이 극히 필요합니다. 누(漏)는 "샌다"는 글자입니다 그것은 미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혹은 자연 몸에서 새어나옵니다. 땀이 몸에서 스며 나오는 것과 같이 마음의 토대가 든든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미혹이 새어나옵니다. 그 새어나오는 미혹을 제거하는 힘, 그것이 큰 힘입니다.
인연 과보를 믿고 나만 생각하는 마음을 버려서 미혹을 없게 하겠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모든 중생이 다 하나입니다.
10. 영원히 습기(習氣)끊음을 아는 지혜의 힘
우리의 마음에 미혹이 없어졌더라도 나중에 미혹이 일어날 듯한 기분이 남아 있는 것을 습기(習氣)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온갖 잘못을 저질러 온 버릇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그러한 습기를 없애버리는 것이 영원히 습기 꾾음을 아는 지혜입니다. 말하자면 미혹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없애버려야 합니다.마음 가운데 있는 아직 악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습기를 영구히 없애버려야 하는 것입니다.그렇지 못하면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을 내지 않아도 성을 낼듯한 기분은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습기(習氣)입니다. 우리들 범부는 다 그렇습니다. 그 습기를 끊는 것, 없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동에 결점이 없기만해도 매우 어렵지만 그 결점이 생겨나기 쉬운 기분까지 완전히 깨끗이 없애버려야먄 참된 깨달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을 해도 이 습기까지 끊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악의 흔적이라고 생각되는 놈들이 올라 오려고 하는 순간 이를 알아채고 털어 버리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열 가지 부처님의 힘을 살아가는 기준으로 삼고 상기에 다짐했던 대로 살아가겠습니다.
<< 四無所畏 >>
부처님께서는 4무소외를 성취하셨다고 합니다. 교를 설할 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누구도 꺼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교를 설하셨고 당신께서 믿으시는 그대로 설하셨다고 합니다. 른 사람 때문에 주저하거나 꺼리지 않는 것이 무소외(無所畏) 입니다.
무소외에는 4가지가 있으니 1)일체지 무소외(一切智無所畏) 2)누진 무소외 (漏盡無所畏) 3)설장도 무소외(說障道無所畏) 4)설진고도무소외(說盡苦道無所畏)가 곧 4무소외입니다.
1. 일체지 무소외(一切智無所畏)에서 일체지(一切智)는 부처님의 지혜이니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므로 당신의 생각하시는 바를 그대로 털어 놓으셔서 설하시고 아무도 꺼려하지 않으셨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이 생각나네요. 깨달음을 얻어서 진리를 터득한다면, 아니 제가 지금 아는 만큼이라도 주저함이 없이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남에게 설하는 것이 옪을까요? 그것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우선 아는 노력부터 하겠습니다.
2. 누진 무소외 (漏盡無所畏)는 미혹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미혹이 조금도 없으시고, 그 미혹이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인간을 대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두려울 것이 없으시답니다. 부처님이 되면 미혹이 없을 것은 물론이고 미혹이 없으면 아무도 두렵지 않을 것이며 거리낄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나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면 온갖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럴것 같습니다.
3. 설장도 무소외(說障道無所畏)는 도의 장애가 되는 것을 설하시되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도의 장애가 된다는 것은 범부가 마음이 교만해지거나,슬픈 일을 당하여 낙심한다거나 돈이 있다고 뽐내거나 세력이 있다고 방자하거나,약간의 학문이 있다고 우쭐해 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도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됩니다. 그와 같은 도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조금도 꺼리낌없이 남에게 설하여 들려준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도의 장애가 되는 것이 있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사실대로 교를 설해서 그러한 도의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해 주는 것이 곧 설장도 무소외입니다. 내 스스로에게 도에 장애가 되는 일은 없는지 늘 경계하고 살펴보겠습니다.
4. 설진고도무소외(說盡苦道無所畏)는 참으로 인간의 괴로움을 제거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것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설하시는 것입니다. 술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중한 병에 걸려서 술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안되는데, 환자가 "어쩌다 조금 먹는 것은 무방 하지요?" 하면 의사는 딱 잘라서 절대로 안된다고 하지 않고 "되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하고 어름어름 해서 보냅니다. 그러나 의사는 그리 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의 번뇌,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길을 조금도 거리낌없이 말하시는 마음을 계시답니다.
부처님처럼은 아닐지라도 앞으로는 제 스스로에게 "정말 아닌것은 정말 아니다" 라고 알려주고 다독여서 몸과 마음의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 공부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정리 해 봤습니다 >>
사실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에 대해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저와는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로만 느꼈습니다. 여여성 도반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조언도 들어봤습니다만 별 효과가 없었고요. 조금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도반님들께서 먼저 올려 놓으신 숙제들을 몇번씩 읽어보면서 저랑 대비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무애안 보살님 처럼 제 마음에 큰 신지 하나를 심어 놓고 흔들림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봤고, 혜서원 보살님처럼 지금부터는 미래생에 대비해서 8정도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운오도 보살님의 생각 처럼 저도 굴곡진 삶을 진지하게 풀어가기 위해 불교를 믿었기에 "부처님의 법만이 나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업의 연결고리인 윤회를 끊을 수 있음"을 믿고 그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알고 있는 법을 실천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결론은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를 삶의 기준으로 삼고 비슷하게라도 부지런히 흉내를 내면서 사는 것이 지금 제가 좋게 사는 최선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한 것과 제 생각을 주절주절 다 올려 보았습니다. 도반님들의 충고와 채찍 부탁드립니다. 까불지 못하도록 단단히 때려 주세요.
부끄럽지만 지금 이만큼만이라도 느끼고 알은 것들이 지속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lease.....
심산 합장 ()
부처님 처럼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부단히 흉내라도 내면서 수행을 하라는 채찍을 주기 위해서 이번 숙제를 내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과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여러 블로그 중에서 저에게 가장 쉽게 이해를 시켜준 내용입니다. 각 항목별로 공부를 하면서 그럼 저는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고 정리 해 보았습니다.
1. 시처(是處)비처(非處)를 아는 지력(智力)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시기, 그 경우를 분별해서 해야하는데 시처((是處)는 그 때 그 일을 하는 것이 적당한 것이고, 비처(非處)는 그 때 그 경우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때 그 경우에 따라 가장 적당한 행동을 분별해 아는 것이 곧 시처와 비처를 아는 지력입니다. 언제 하느냐, 어디서 하느냐, 누구에게 하느냐, 이렇게 세 가지 표준 에 따라 그것이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때와 곳과 상대를 올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시처(是處)비처(非處)를 아는 지력"인데 이런 지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 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늘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실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해 봤습니다. 그런데 건건이 그러고 있다가는 무슨 작은 일 하나도 제때에 제대로 해 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2. 삼세(三世)의 업보(業報)를 아는 지혜의 힘
삼세는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우리들의 평생 동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업보의 업(業)은 자기의 행동이요 그 행동에 의해 얻는 결과가 보(報)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세상에서 한 일에 대해 이 세상에서 받는 그 결과가 업보이고 또는 이 세상에서 하는 일에 대해 미래의 세상에서 받는 결과가 또한 업보입니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 미래와의 관계를 완전히 아는 힘, 그것이 삼세의 업보를 아는 힘입니다. 현재 과거 미래에도 업과 보는 되풀이 됩니다. 삼세의 업보를 안다는 것은 다만 업보뿐만 아니라 그 보를 더욱 좋게 하는 길도 아는 것입니다. 업(業)에 대해 보(報)가 있는데 정보(正報)와 의보(依報)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보란 자기의 몸과 마음, 의보란 자기의 환경, 경우입니다. 전에 한 자기의 업(행동)에 의해 지금의 자기는 어떠한 몸을 가지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또 지금의 자기가 어떠한 경우, 환경에 있는가 하는 것도 역시 과거에 자기가 한 업에 의해 결정됩니다.그것이 정보와 의보입니다. 업보라는 것은 마치 큰 나무가 자꾸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자라면 그 자란 끝이 또 자라고 그 끝이 또 더 자라고 하는 것과 같이 업이 보를 낳고 그 보가 또 업이 되어 다시 새로운 보를 낳고 하여 언제까지나 계속됩니다. 제가 한 일은 제가 다 거둬들여야 하므로 하는 말 하나하나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참 잘 생각해야 하는데 위의 시처비처를 아는 힘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러다가는 날 새는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해서 고민이 됩니다. 걍 봉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3. 모든 선(禪), 해탈(解脫), 삼매(三昧)를 아는 지혜의 힘
선이란 인도말로 선나(禪那), 한문으로 정려(靜慮), 생각을 안정시킨다는 뜻입니다. 해탈이란 번뇌의 속박을 벗는 것입니다. 미혹을 없애고 도를 깨달아서 자재(自在)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매란 인도말로 삼매야의 준말이고,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선, 해탈, 삼매는 한마디로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것"입니다.언제든지 평온한 마음을 터득하는 것이 선, 해탈, 삼매를 아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언행을 삼가고 조용히 생각하고 토론 해 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평온한 마음을 터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해 봤습니다. 제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도 스님과 도반님들께 묻고 묻고 물어가면서 평온한 마음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4. 모든 근기(根機)의 우열(優劣:나음과 못함)을 아는 지혜의 힘
부처님께서 똑같이 가르침을 설하셔도 듣는 사람에 따라 그 얻는 바가 각각 다릅니다. 그 것은 듣는 사람의 근기(가르침을 해득하는 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의 근기를 안다는 것은 부처님이 아닌 이상 좀처럼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근기를 안다는 것은 좀처럼 안된다는데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 생각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하는 습관을 버리고 제 나름 대로 생각하는 상대방의 근기에 맞춰 대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5. 가지가지의 해(解)를 아는 지혜의 힘
가지가지의 해는 가르침을 듣는 사람의 성질과 기질에 따라 그 이해하는 바, 그 집착하는 바가 다름을 말합니다. 듣는 사람의 사정, 환경 등에 따라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아는 것이 가지 가지의 해(解)를 아는 것입니다. 한 말에 대해 들은 사람이 각기 어느 정도 이해했는가를 살펴서 낱낱이 분별해 아는 힘, 이것이 없이는 진정으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지가지 해를 아셔서 듣는 사람의 이해하는 정도를 낱낱이 다 알아 분별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위의 네번째 "근기의 우열을 아는 지혜의 힘"과 이번의 "가지가지의 해를 아는 힘" 의 차이를 잘 분간하지 못하겠습니다. 제 근기가 열해서인 것 것 같습니다.
6. 가지가지의 계(界)를 아는 지혜의 힘
계(界) 란 인과(因果)의 이치에 따른 과보이며 그로 인한 환경과 처지로서 사람들의 신상(身上)입니다. 인간은 환경과 사정이 다 다르므로 그것을 잘 알아주어야 합니다. 특히 이해(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것)관계에 있어서는 그 사람의 처지에 따라 각자가 크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처지를 잘 알아서 그에 알맞게 가르쳐 인도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교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비가 오면 우산장수는 좋아하고 얼음 장수는 싫어합니다. 모든 것이 그 사람의 환경에 따라 좋게도 해석되고 나쁘게도 해석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가지가지 경계를 알지 못하고는 교를 설하지 못합니다. 다 같이 존귀한 말을 말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감탄하고 어떤 사람은 반감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교를 설하는데 이 "가지가지의 계(界)를 아는 지혜의 힘"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또한 저는 위의 네번째 다섯번째 힘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제가 아는 대로 제가 느끼는 대로의 상대방 근기에 맞춰 가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7. 일체에 이르는 길(道)을 아는 지혜의 힘
이르는 바의 길(所至道)이란 현재 하는 일로 인해 그 결과가 어떤데 이르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행동에 의해 앞날의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모든 사람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좀처럼 알지 못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그가 하고 있는 일이 결국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그 결과를 판단해서 아는 힘이 없으면 남을 가르쳐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꼐서는 모든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내다 보시고 일체의 인간을 가르쳐 인도 하십니다.
우매하고 게으른 제가 다른 사람의 길을 알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 하는 일로 인해 저의 미래가 결정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업보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을 믿기에 늘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수행하고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8. 천안(天眼)이 무애(無碍)함을 아는 지혜의 힘
천안이 막힘이 없다는 것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데 있어서 막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인데 번뇌에 가려져 있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미혹으로 가려져 있으면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지혜가 나아가기만 하면 보통 인간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환히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삿된 생각을 버리고 버려서 늘 청정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으로 여기고 참 나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가면서 살겠습니다.
9. 숙명(宿命)이 무루(無漏)함을 아는 지혜의 힘
숙명이란 자기가 전생에서의 한 일에 의해 어떠한 운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왔을 때는 이미 환경이 정해져 있지만 그 환경가운데서라도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가장 좋은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숙명을 아는 것입니다. "무루"란 욕망을 없애는 것입니다. 조그만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사물을 생각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입니다. 완전히 미혹을 없애려면 숙명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또 남에 대해서도 그의 처지를 살펴주는 것이 극히 필요합니다. 누(漏)는 "샌다"는 글자입니다 그것은 미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혹은 자연 몸에서 새어나옵니다. 땀이 몸에서 스며 나오는 것과 같이 마음의 토대가 든든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미혹이 새어나옵니다. 그 새어나오는 미혹을 제거하는 힘, 그것이 큰 힘입니다.
인연 과보를 믿고 나만 생각하는 마음을 버려서 미혹을 없게 하겠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모든 중생이 다 하나입니다.
10. 영원히 습기(習氣)끊음을 아는 지혜의 힘
우리의 마음에 미혹이 없어졌더라도 나중에 미혹이 일어날 듯한 기분이 남아 있는 것을 습기(習氣)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온갖 잘못을 저질러 온 버릇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그러한 습기를 없애버리는 것이 영원히 습기 꾾음을 아는 지혜입니다. 말하자면 미혹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없애버려야 합니다.마음 가운데 있는 아직 악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습기를 영구히 없애버려야 하는 것입니다.그렇지 못하면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을 내지 않아도 성을 낼듯한 기분은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습기(習氣)입니다. 우리들 범부는 다 그렇습니다. 그 습기를 끊는 것, 없이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동에 결점이 없기만해도 매우 어렵지만 그 결점이 생겨나기 쉬운 기분까지 완전히 깨끗이 없애버려야먄 참된 깨달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을 해도 이 습기까지 끊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악의 흔적이라고 생각되는 놈들이 올라 오려고 하는 순간 이를 알아채고 털어 버리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열 가지 부처님의 힘을 살아가는 기준으로 삼고 상기에 다짐했던 대로 살아가겠습니다.
<< 四無所畏 >>
부처님께서는 4무소외를 성취하셨다고 합니다. 교를 설할 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누구도 꺼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교를 설하셨고 당신께서 믿으시는 그대로 설하셨다고 합니다. 른 사람 때문에 주저하거나 꺼리지 않는 것이 무소외(無所畏) 입니다.
무소외에는 4가지가 있으니 1)일체지 무소외(一切智無所畏) 2)누진 무소외 (漏盡無所畏) 3)설장도 무소외(說障道無所畏) 4)설진고도무소외(說盡苦道無所畏)가 곧 4무소외입니다.
1. 일체지 무소외(一切智無所畏)에서 일체지(一切智)는 부처님의 지혜이니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므로 당신의 생각하시는 바를 그대로 털어 놓으셔서 설하시고 아무도 꺼려하지 않으셨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이 생각나네요. 깨달음을 얻어서 진리를 터득한다면, 아니 제가 지금 아는 만큼이라도 주저함이 없이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남에게 설하는 것이 옪을까요? 그것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우선 아는 노력부터 하겠습니다.
2. 누진 무소외 (漏盡無所畏)는 미혹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미혹이 조금도 없으시고, 그 미혹이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인간을 대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두려울 것이 없으시답니다. 부처님이 되면 미혹이 없을 것은 물론이고 미혹이 없으면 아무도 두렵지 않을 것이며 거리낄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나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면 온갖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럴것 같습니다.
3. 설장도 무소외(說障道無所畏)는 도의 장애가 되는 것을 설하시되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도의 장애가 된다는 것은 범부가 마음이 교만해지거나,슬픈 일을 당하여 낙심한다거나 돈이 있다고 뽐내거나 세력이 있다고 방자하거나,약간의 학문이 있다고 우쭐해 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도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됩니다. 그와 같은 도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조금도 꺼리낌없이 남에게 설하여 들려준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도의 장애가 되는 것이 있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사실대로 교를 설해서 그러한 도의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해 주는 것이 곧 설장도 무소외입니다. 내 스스로에게 도에 장애가 되는 일은 없는지 늘 경계하고 살펴보겠습니다.
4. 설진고도무소외(說盡苦道無所畏)는 참으로 인간의 괴로움을 제거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것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설하시는 것입니다. 술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중한 병에 걸려서 술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안되는데, 환자가 "어쩌다 조금 먹는 것은 무방 하지요?" 하면 의사는 딱 잘라서 절대로 안된다고 하지 않고 "되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하고 어름어름 해서 보냅니다. 그러나 의사는 그리 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의 번뇌,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길을 조금도 거리낌없이 말하시는 마음을 계시답니다.
부처님처럼은 아닐지라도 앞으로는 제 스스로에게 "정말 아닌것은 정말 아니다" 라고 알려주고 다독여서 몸과 마음의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 공부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정리 해 봤습니다 >>
사실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에 대해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저와는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로만 느꼈습니다. 여여성 도반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조언도 들어봤습니다만 별 효과가 없었고요. 조금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도반님들께서 먼저 올려 놓으신 숙제들을 몇번씩 읽어보면서 저랑 대비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무애안 보살님 처럼 제 마음에 큰 신지 하나를 심어 놓고 흔들림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봤고, 혜서원 보살님처럼 지금부터는 미래생에 대비해서 8정도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운오도 보살님의 생각 처럼 저도 굴곡진 삶을 진지하게 풀어가기 위해 불교를 믿었기에 "부처님의 법만이 나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업의 연결고리인 윤회를 끊을 수 있음"을 믿고 그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알고 있는 법을 실천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결론은 부처님의 십력과 사무소외를 삶의 기준으로 삼고 비슷하게라도 부지런히 흉내를 내면서 사는 것이 지금 제가 좋게 사는 최선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한 것과 제 생각을 주절주절 다 올려 보았습니다. 도반님들의 충고와 채찍 부탁드립니다. 까불지 못하도록 단단히 때려 주세요.
부끄럽지만 지금 이만큼만이라도 느끼고 알은 것들이 지속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lease.....
심산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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