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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덮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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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07-05 04:43 조회19,501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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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蓋(개) 

 다음은 nīvaraṇa(니와라나 蓋)이다. 마음에 蓋(개 : 뚜껑)를 닫아놓고 있는 것이다. 보통 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蓋는 5가지이다. 그래서 五蓋(오개)라 한다.

  아비담마에서는 경전에 없는 마지막의 avijjā-nīvaraṇa(아윗자 니와라나 : 무명의 蓋)를 더해서 6가지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에서는 6가지로 되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경전의 5가지의 蓋(개)를 기억해 두면 된다. 경전 쪽이 오래된 것이고, 석가모니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소금에 야채를 절이기 위해 돌을 얹듯이 마음에 蓋(개 : 뚜껑)랄까, 무거운 돌을 얹어두고 있는 것이다. 자유롭지 못하게 마음이 억눌려 있다.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는 수행이나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하나하나 蓋(개)를 벗겨갈 수도 있으나, 역시 그러기에는 그 나름의 노력을 해야 한다.

  kāma-cchanda(캄맛찬다)는 ‘欲(욕)’이다. 앞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chanda(찬다 : 좋아함)라는 말을 붙여서 ‘欲(욕)이 좋다’라는 것으로 眼耳鼻舌身(안이비설신)의 대상인 色聲香味觸(색성향미촉)을 ‘아, 그것이 좋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상하고 있으면 ‘아, 맛있는 밥을 먹고 싶구나!’라든가, ‘빨리 끝내고 TV를 보고 싶구나.’ 등의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그것은 kāma-cchanda(캄맛찬다)이다. 행하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하고 싶게 된다. 그러한 마음이 있는 한 선정이나 깨달음은 생겨나지 않는다. 眼耳鼻舌身에 갖혀 있는 한, 眼耳鼻舌身을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상에 붙잡혀 갇혀 있는 동안은 그것을 초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kāma-cchanda가 선정에 들지 못하게, 열반에 들지 못하게, 마음이 성장하지 못하게 뚜껑을 닫고 있는 것이다.

  Byāpāda(비아파다)는 ‘성냄(怒)’이다. 성냄도 또한 동일한 眼耳鼻舌身과 관계있는 것이다. 대상과 마음의 관계로서 어떤 대상을 보고 ‘그것은 싫다.’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그 대상에 갇혀 있다. ‘나는 저 사람이 싫다.’라고 한다면 자신이 그 사람에게 갇혀 있고, 관계가 있는 것이다.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싫지도, 좋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저 사람이 싫어.’라는 경우나 ‘저 사람이 좋아.’라는 경우나 둘 다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byāpāda(怒)라는 것도 俗世間(속세간)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선정이나 깨달음과는 관계가 없는 세계이다.

 

Thīna-middha(티나 밋다)는 昏沈(혼침)·睡眠(수면)이다. 마음이 졸리는 상태이다. 이것도 心所(심소)이다. 마음이 회전하지 않는다. 원기가 없다. 병이다. 그러므로 昏沈·睡眠도 禪定(선정)이나 解脫(해탈)을 억누른다.

 

  다음은 uddhacca-kukkuca(웃닷짜 쿡쿠짜)이다. Uddhacca라는 것은 ‘혼란상태’이다. 안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마음에, 안절부절은 아니지만, 무언가 안정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冷靜(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옛 비유로 하면 재에다 돌을 던진 것처럼, 재가 튀어 올라 가라앉지 않은, 마음이 그렇게 散亂(산란)한 상태이다.

  Kukkuca는 ‘後悔(후회)’이다. 과거로 끌려가는 것이다. 일이 잘 되지 않았다든가,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든가 따위이다. 예를 들어 ‘오늘은 명상이 잘 되지 않았다.’라는 것은 後悔이다. 나쁜 행위, 죄이다. 성냄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명상하면서 성냄을 번식시키든가, 그것으로 다시 성냄을 없애려고 하든가, 그런 것을 되풀이할 뿐으로 끝이 없다.

  내가 아무리 언급하여도 여러분은 마음이라는 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대상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잘 되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하는 그런 것은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잘 됐다.’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뽐내는 것, 欲(욕)을 번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아, 오늘은 잘 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後悔(후회)이고, 성냄의 죄이기 때문에 번뇌만 번식시키게 된다. 그렇게 해서 번뇌를 없애고자 하는 것은 조금 무리이다.

  방식이 간단하다고 해도 진정한 위빳사나는, 그 시스템 자체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싸우지 않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Vicikiccā(위찌킥짜)는 ‘疑心(의심)’이다. 의심은 마음이 단단하지 않은 상태이다. 알려고 하지 않는 상태이다. 마음에 어떤 알지 못하는, 지식적인 의심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라고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vicikiccā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럼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해보자.’라고 조사할 것이다. 그것은 불교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것은 지식적인 의심이랄까, 본래의 의심은 아니다. 탐구심이랄까, 남이 한 말의 뜻을 몰라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말인가 하고 스스로 조사해보자라는 강한 마음이다.

  여기서 蓋(개)라고 말하고 있는 vicikiccā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거짓이겠지, 그런 것은.’이라는 느낌의, 스스로 확인해보고자 않지 않는, 매우 가벼운, 게으른 마음이다. 이것은 ‘지식적 게으름’이라고 현대어로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정신적인 게으름이 아닌, 지식적인 게으름인 것이다.

 

  Avijjā(아윗자 무명)는 앞서 upādāna(우빠다나 고집)를 설명할 때 나오는 4가지 가운데 diṭṭhi(딧티 見)이다. 그런데 아비담마에서는 이것을 포함하면 곤란해진다. 왜냐 하면 마음(心), 心所(심소), 色(색 : 물질), 涅槃(열반)이라는 實法(실법)의 해설을 계속 해온 내용에는 avijjā라는 心所(심소)가 없기 때문이다. Moha(모하 痴 치)라면 있지만.

  경전에 바탕을 두면 avijjā는 見(견)이라는 心所(심소)이다. 아비담마에 기초하면 그것은 痴(치)·無知(무지 moha)라는 심소가 된다. 연결해서 해설하고 있으므로 문제는 없으나, 경전에서는 avijjā(무명)라는 말을 매우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고, avijjā(무명)란 무엇인가 하면 ‘만들어진 일체의 것은 無常(무상)이고, 現象(현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 노력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일체의 생명은 본래 無明(무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avijjā(무명)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일체를 깨달아버리는 것이다. 無明(무명 어두움)이 없어지고, 明(명 밝음)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avijjā(무명)을 소멸하고자 해도 위의 5가지의 심소가 蓋(개 : 덮개, 장애)가 되어서 방해한다. 우리는 眼耳鼻舌身(안이비설신)으로부터 들어오는 대상을 좋아하고, 眼耳鼻舌身으로부터 들어오는 대상에 성내버리며, 졸림이 생기고, 혼란하며, 후회하고, 진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蓋(개)로 방해되어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 蓋(개)는 명상에 의해서 소멸할 수 있다. 그것은 역으로 이 蓋(개)가 생겨나면 명상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양방으로 노력해야 한다. 명상하면 五蓋(오개)·六蓋(육개)는 점점 사라져 가지만 명상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이 五蓋·六蓋를 처음부터 억제해 두어야 한다. ‘欲(욕)은 이제 됐다. 그만이다. 수행 중에는 더 이상 성내지 않는다. 혼침·수면이 생기지 않도록 어떻게든 노력한다.’라는 식으로 수행하면 蓋(개)가 기능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수행이 진전되면 더욱 蓋(개)가 기능하지 않게 되고, 이어서 쉭 사라진다. 그래서 蓋(개)가 사라지면 매우 원기 있게 되고, 원기가 생기면 곧장 禪定(선정)도 생겨나며, 깨달음의 경지로 들어 갈 수가 있다.

  그러한 식으로 열반이라는 상태, 사람의 마음에 지혜가 나타나는 상태가 되지 못하도록 蓋(개 덮개)로 막아둔다는 의미로 여기에 열거했듯이 6가지의 蓋가 있다.

  固執(고집)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4가지가 된다. 軛(액)이라 하면 4가지가 된다. 그런 식으로 명확하게 마음의 작용을 분석하고 있다.

 

 

 

 

댓글목록

지선행님의 댓글

지선행 작성일

후회하는 마음이 버리고 걷어내야할 오개중 하나로 성냄을 번식 시키는 죄업이라는 가르침에 늘 생각없이 저지르고 뒤늦게 후회를 반복하고 그것이 잘못인줄 몰랐던 지난날을 깊이 반성 합니다...가르침을 받은 이 순간부터라도 어떤 한 생각, 한 행동을 하기 앞서 후회의 여지를 두지 않기위해 신중하게 깊이 생각하고 행동 하겠습니다 ()

자현님의 댓글

자현 작성일

삼보에 귀의합니다.오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늘 깨어 있겠습니다.

김영채님의 댓글

김영채 작성일

잘 몰라서 그런지 오개를 다시 천천히 읽어보니 세번째 오개인 혼침/수면 (티나 밋다)는. 왠지 다른 사개의 결과물인것 같다는 의미로 저에게는 해석되는것 같기도 해서 다른 4개랑은 좀 구별되어보이는데 제가 잘못 이해한것인지요?

헛똑똑이님의 댓글

헛똑똑이 작성일

마음을 가리는 덮개는 <명상>을 통해서 제거할 수 있다라는 말씀에 큰 힘을 얻습니다. 모든 장애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믿고 따르기만하면 해결이 가능할텐데, ,제 앞엔 여전히 <정신적 게으름>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정말..가능할까..","아...시간이 없어", 그리곤 오늘 하루도 무거운 덮개에 눌린 채로 무명의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Green님의 댓글

Green 작성일

지금을 몰록 살아낼수 있다면 오개의 장애를 극복할수 있을것 같은데...지금에 집중하는 것도 역시 명상의 힘을 빌려야 할것같습니다.

sweetcandy님의 댓글

sweetcandy 작성일

오개라는 탈바가지를 뒤집어 쓴 까닭에 그 탈을 벗고자 나혼자 struggle 하고있습니다.

은서님의 댓글

은서 작성일

저는 아직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르겠다는 큰 원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삶 속에서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마음이 졸리거나 혼란스럽고, 후회하거나 의심하는 이런 마음에서 자유롭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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