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23.선문禪門에서의 자비-선사禪師의 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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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24-01-05 14:50 조회5,8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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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에서의 자비-선사禪師의 방편●
남악회양 스님이 육조혜능 스님을 찾아 갔을 때, 혜능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숭산崇山에서 왔습니다.
“무슨 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이에 회양은 말문이 턱 막혀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다시 숭산으로 돌아갔습니다.
혜능스님이 툭 던진 이 ‘한 물건’에 통째로 캄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남악에 틀어박혀 8년의 치열한 참선, 참구 끝에 득도한 뒤, 회양은 다시 혜능스님을 찾아갔습니다.
혜능스님이 이전과 똑같이 물었습니다.
“무슨 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이에 회양스님이 곧바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옳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혜능스님이 이어 바로 물었습니다.
“닦아서 증득하는 것인가?”
“닦아서 증득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본래 오염될 수는 없습니다!.”
“이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모든 부처님들이 호념護念하시는 바이다.
그대가 이미 그러하였고 나 또한 그대와 같다.”
그것으로 회양스님은 6조 혜능스님에게 인가를 받았고, 그 길로 15년 동안을 혜능스님을 모시고 극진히 시봉하였습니다.
저 유명한 문답인 이 ‘한 물건’ 화두가 된 선문답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두 스님은 아무런 인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혜능스님의 법력을 믿은 회양스님은 혜능스님이 툭 던진 이 ‘한 물건’에 제대로 걸려버렸습니다. 그리곤 8년 동안 이 ‘한 물건’을 의심하여 치열하게 참구 했습니다. 그런 수행 끝에 회양스님은 ‘한 물건’에 온전히 계합契合했습니다.
선사들의 자비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혜능스님의 방식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일반적 차원에서 그다지 자비로운 모습은 아닙니다.
평상적으로 공부를 묻고자 찾아온 학인을 만난다면, 그간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해왔는지,
그 공부 과정이 어땠는지, 무엇이 의심스러운지를 차근차근 물어보고는, 공부의 부족한 점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스승으로서의 자상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혜능스님을 비롯해 어록에 등장하는 조사들 대부분은 그런 모습으로 자상하지 않았습니다. 자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자비하기까지 합니다.
덕산스님의 방棒(몽둥이질)이나 임제스님의 할喝(고함쳐꾸짖음)에 비하면 혜능대사의 제접 방법은 오히려 자비로운 축입니다.
천여 년 전 중국의 유명한 조사가 아닌, 가까운 한국의 선사를 돌이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철스님도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결코 자비로운 분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점검받고자 찾아 오는 선객들은 언제나 성철스님께 죽비로 얻어 맞고는 문답을 시작했다는 일화가 수좌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일이 이제 전설처럼 들려오고 있습니다.
공부에 대해 성철스님으로부터 따뜻한 격려를 들었다는 수좌는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다정한 모습으로 공부를 격려해 주신 모습은 무언의 고개 끄덕임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사들이 이렇듯 무시했던 것은 아닙니다. 송광사의 어르신이셨던 구산스님은 공부인들의 수행 과정이나 경계도 세심하게 들어주시고, 수행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상한 선사는 무척이나 희소합니다.
전반적으로 보아 선사들이 가르침을 주는 방식이나 그 선사들의 성품은 성철스님처럼 무심하면서도 냉담한 편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왔을 땐 구산스님처럼 했었는데 점점 시크해지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조계종의 대표적인 수행 방식은 간화선看話禪이고, 이 간화선의 핵심은 '의심,의문'입니다.
선, 특히 참구하는 선은, 진리를 이론으로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이 ‘한 물건’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사량, 언설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커다란 의심의 덩어리를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이미 회향스님은 경률론을 다 섭렵한 박학다식한 학승이었습니다. 혜능스님은 경전은 커녕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상대방을 단숨에 파악하여 살아있는 언설로 공부 경계를 단번에 압도해 버리는 대장부의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압도한 자리에 ‘한 물건’이라는 커다란 살아있는 의심을 주었고요.
《조산록曹山錄》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옵니다.
조산본적(曹山本寂)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감천甘泉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밭 가는 농부에게서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 했다는데, 무엇이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는 것입니까?”
“노지(路地)를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입니까?”
“제호(醍醐:우유로 만든 맛좋은 음식)를 물리치는 것이다.”
스승은 공부인이 믿고 의존하는 그 대상을 빼앗아 없애 버린다는 뜻입니다. 무릇 사람이라면 이 대상을 믿음으로써 실체감을 얻게 되고, 대상에 의지함으로써 이 존재감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목있는 선사들은 공부인들로부터 이러한 여지들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 어떤 조건과 상태에 의해 얻어진 깨달음은
이 허공같은 ‘한 물건’ 앞에서 앞뒤없이 꽉 막히게 됩니다. 생각이 작용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간 공부 혹은 수행으로 닦아서 이뤄온...형성된 관념이 여지 없이 와해됩니다.
이러한 경지를 크게 죽어 참으로 살아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수 많은 선사들은 선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따뜻한 격려보다 무심한 채찍질을 주었습니다.
그 채찍질은 자신의 공부를 돌이켜 보고, 그 모든 방식으로서의 착각의 실체화를 부수는 그런 찐자비의 채찍질이었습니다.
만일 참선인들이 의심으로 제대로 들어간다면, 착각의 실체화나 분별심이 지니는 관성의 힘은 확연히 꺾입니다.
그리고 이 깊은 의심의 힘으로 그 중심에서 생각놀음을 일삼는 아상我相이 타파되고야 맙니다.
기실 ‘나’란 무명의 중생이 지니게 되는 가장 강력한 집착이며 분별이고, 또한 버리지 못하는 실체입니다. 이 ‘나’라는 허상이 부서질때에, 눈 앞에 온통, 온전히, 활달히 열린 전체를 만나게 됩니다.
혜능스님이 툭 던져준 ‘한 물건’이나, 덕산의 방, 임제의 할, 그리고 성철스님의 죽비는 이 禪이라는 유구한 확철대오 선의 전통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대오의 종자를 심어주기 위한 선사들의 자비였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자상하게 어루만져주어야만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명 번뇌를 없애주거나, 아상을 깨뜨려주고, 착각의 실체화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그것 역시 사람을 진정으로 살리는 자비입니다. 자비에는 정해진 모양이나 방식이 없으나 이 허공같은 최상승의 자비에 계합하는 것이 있다면, 그 모든 인연따라 일어난 경계가 자비의 여실한 불이법문不二法門이 될 것입니다.
남악회양 스님이 육조혜능 스님을 찾아 갔을 때, 혜능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숭산崇山에서 왔습니다.
“무슨 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이에 회양은 말문이 턱 막혀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다시 숭산으로 돌아갔습니다.
혜능스님이 툭 던진 이 ‘한 물건’에 통째로 캄캄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남악에 틀어박혀 8년의 치열한 참선, 참구 끝에 득도한 뒤, 회양은 다시 혜능스님을 찾아갔습니다.
혜능스님이 이전과 똑같이 물었습니다.
“무슨 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이에 회양스님이 곧바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옳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혜능스님이 이어 바로 물었습니다.
“닦아서 증득하는 것인가?”
“닦아서 증득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본래 오염될 수는 없습니다!.”
“이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모든 부처님들이 호념護念하시는 바이다.
그대가 이미 그러하였고 나 또한 그대와 같다.”
그것으로 회양스님은 6조 혜능스님에게 인가를 받았고, 그 길로 15년 동안을 혜능스님을 모시고 극진히 시봉하였습니다.
저 유명한 문답인 이 ‘한 물건’ 화두가 된 선문답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두 스님은 아무런 인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혜능스님의 법력을 믿은 회양스님은 혜능스님이 툭 던진 이 ‘한 물건’에 제대로 걸려버렸습니다. 그리곤 8년 동안 이 ‘한 물건’을 의심하여 치열하게 참구 했습니다. 그런 수행 끝에 회양스님은 ‘한 물건’에 온전히 계합契合했습니다.
선사들의 자비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혜능스님의 방식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일반적 차원에서 그다지 자비로운 모습은 아닙니다.
평상적으로 공부를 묻고자 찾아온 학인을 만난다면, 그간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해왔는지,
그 공부 과정이 어땠는지, 무엇이 의심스러운지를 차근차근 물어보고는, 공부의 부족한 점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스승으로서의 자상한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혜능스님을 비롯해 어록에 등장하는 조사들 대부분은 그런 모습으로 자상하지 않았습니다. 자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자비하기까지 합니다.
덕산스님의 방棒(몽둥이질)이나 임제스님의 할喝(고함쳐꾸짖음)에 비하면 혜능대사의 제접 방법은 오히려 자비로운 축입니다.
천여 년 전 중국의 유명한 조사가 아닌, 가까운 한국의 선사를 돌이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철스님도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결코 자비로운 분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점검받고자 찾아 오는 선객들은 언제나 성철스님께 죽비로 얻어 맞고는 문답을 시작했다는 일화가 수좌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일이 이제 전설처럼 들려오고 있습니다.
공부에 대해 성철스님으로부터 따뜻한 격려를 들었다는 수좌는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다정한 모습으로 공부를 격려해 주신 모습은 무언의 고개 끄덕임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사들이 이렇듯 무시했던 것은 아닙니다. 송광사의 어르신이셨던 구산스님은 공부인들의 수행 과정이나 경계도 세심하게 들어주시고, 수행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상한 선사는 무척이나 희소합니다.
전반적으로 보아 선사들이 가르침을 주는 방식이나 그 선사들의 성품은 성철스님처럼 무심하면서도 냉담한 편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왔을 땐 구산스님처럼 했었는데 점점 시크해지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조계종의 대표적인 수행 방식은 간화선看話禪이고, 이 간화선의 핵심은 '의심,의문'입니다.
선, 특히 참구하는 선은, 진리를 이론으로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이 ‘한 물건’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사량, 언설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커다란 의심의 덩어리를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이미 회향스님은 경률론을 다 섭렵한 박학다식한 학승이었습니다. 혜능스님은 경전은 커녕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상대방을 단숨에 파악하여 살아있는 언설로 공부 경계를 단번에 압도해 버리는 대장부의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압도한 자리에 ‘한 물건’이라는 커다란 살아있는 의심을 주었고요.
《조산록曹山錄》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나옵니다.
조산본적(曹山本寂)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감천甘泉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밭 가는 농부에게서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 했다는데, 무엇이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는 것입니까?”
“노지(路地)를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입니까?”
“제호(醍醐:우유로 만든 맛좋은 음식)를 물리치는 것이다.”
스승은 공부인이 믿고 의존하는 그 대상을 빼앗아 없애 버린다는 뜻입니다. 무릇 사람이라면 이 대상을 믿음으로써 실체감을 얻게 되고, 대상에 의지함으로써 이 존재감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목있는 선사들은 공부인들로부터 이러한 여지들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 어떤 조건과 상태에 의해 얻어진 깨달음은
이 허공같은 ‘한 물건’ 앞에서 앞뒤없이 꽉 막히게 됩니다. 생각이 작용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간 공부 혹은 수행으로 닦아서 이뤄온...형성된 관념이 여지 없이 와해됩니다.
이러한 경지를 크게 죽어 참으로 살아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수 많은 선사들은 선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따뜻한 격려보다 무심한 채찍질을 주었습니다.
그 채찍질은 자신의 공부를 돌이켜 보고, 그 모든 방식으로서의 착각의 실체화를 부수는 그런 찐자비의 채찍질이었습니다.
만일 참선인들이 의심으로 제대로 들어간다면, 착각의 실체화나 분별심이 지니는 관성의 힘은 확연히 꺾입니다.
그리고 이 깊은 의심의 힘으로 그 중심에서 생각놀음을 일삼는 아상我相이 타파되고야 맙니다.
기실 ‘나’란 무명의 중생이 지니게 되는 가장 강력한 집착이며 분별이고, 또한 버리지 못하는 실체입니다. 이 ‘나’라는 허상이 부서질때에, 눈 앞에 온통, 온전히, 활달히 열린 전체를 만나게 됩니다.
혜능스님이 툭 던져준 ‘한 물건’이나, 덕산의 방, 임제의 할, 그리고 성철스님의 죽비는 이 禪이라는 유구한 확철대오 선의 전통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대오의 종자를 심어주기 위한 선사들의 자비였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자상하게 어루만져주어야만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명 번뇌를 없애주거나, 아상을 깨뜨려주고, 착각의 실체화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그것 역시 사람을 진정으로 살리는 자비입니다. 자비에는 정해진 모양이나 방식이 없으나 이 허공같은 최상승의 자비에 계합하는 것이 있다면, 그 모든 인연따라 일어난 경계가 자비의 여실한 불이법문不二法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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