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오롯이 고요함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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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현사 작성일17-04-30 21:26 조회27,4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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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장스님께서 2016년 11월 16일, 수요선방모임 도반들에게 단하천연의 시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孤寂을 즐기는 것을 보고
한 평생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고적한 구절을 한가히 읊고 있노라면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음을 아노라.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노력하라.
누구나 이 말을 하나 뜻은 알지 못한다.
아는 이라면 모두 길동무가 되거늘,
어찌 가시덤불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가시덤불 망망하니 어디가 끝인가.
온 대중이 종일토록 떠들어 대는구나.
무리들이 끝없이 떠들어 대니
가엾다! 진실은 공연히 전하지 않네.
전하는 말, 메아리 소리, 모두 듣지 못하니
마치 촛불을 동이 안에 켠 것 같도다.
광명이 비치는 줄은 모두 알지만
정작 볼 때엔 어두컴컴 면할 수 없네.
어두컴컴 무명을 못 깨닫고 일생을 마치니
이런 무리, 티끌과 모래로도 견줄 수 없네.
마치 낚시에 걸린 연못 속의 고기와 같고
거물에 걸려든 새와 다를 바 없다네.
이 근심은 원래부터 진실로 오래 되었으니
사방과 상하에 멀고 아득히 펼쳐졌다.
깜짝할 사이에 미혹하여 병들어 죽으면
번뇌를 벗어나지 못하여 통곡 소리만 구슬프네.
구슬프게 울며 원망해도 끝내 이익 없으니
이 몸을 고통의 지옥에 가둘 뿐이라네.
이럴 때에 이르러 후회한들 무었하랴!
하늘 땅 어디라도 孤寂은 알 길 없다네.
孤寂은 우주에서 가장 좋은 경지이라
영원히 읊으면서 한가롭게 마루에 누웠노라면
찬바람이 낙엽을 휘몰아도 걱정 없으니
그 어찌 여린 풀들이 서리 만남을 근심하랴.
송죽松竹이 추위를 이기는 뜻만을 지켜보노니
사시에 변함없이 맑은 바람 흘러 나온다.
봄과 여름은 잠시 동안 뭇 나무에 가리우나
가을과 겨울에는 변함없이 울창한 숲 이룬다.
그러므로 세상 일엔 강유鋼柔가 있음을 알겠노니
무엇하러 마음 기울여 맑거나 흐린 무리를 따르랴.
두 끼니의 거친 음식으로 인연 따라 살아가니
한 몸에 인연따라 베옷과 솜옷을 걸친다네.
바람과 물결따라 동서에 맡겨두니
그 어찌 땅 좁음과 하늘 낮음을 근심하랴.
사람들은 알지 못하여 틀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아 미혹하지 않는다네.
미혹하지 않으려면, 미혹치 않는 마음 있어야하니
보기에는 얕은 것 같으나 쓰려면 깊고 깊다네.
이러한 보물을 얻기만 한다면
어찌 나무꾼이 황금 얻은 것에 비유 하겠는가.
황금은 단련할수록 진짜 금이 되고
맑은 구슬은 광채 그 자체이어도 남에게 안보인다.
깨치면 털끝 방울물에 바다를 넣으니
땅덩이가 하나의 먼지임을 알겠네.
먼지와 물 방울을 분별하면 허물 면치 못하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에 머물려고 하지 말라.
먼 하늘에서 새 발자국을 찾는 것 같아서
현묘한 가운데서 더욱 현묘하리라.
하나를 들어 모든 것에 대어보면 족히 알수 있는데
무엇 하러 여러 가지 말로 설명 하겠는가.
주린이가 와서 먹고 배 부른 것을 보았으나
간장이 목 마른 이를 죽였단 말은 못 들었네.
많은 사람들이 도를 말하나 도를 행하지 않으니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도 거짓으로 깨달은 체 하네.
세치의 잘 드는 칼로 넓은 길을 개척하나
만 그루의 가지 나무가 몸 주위에 우거졌네.
애오라지 孤寂事를 깊히 되돌려 적으니
종자기鍾子期가 백아伯牙의 거문고를 듣네.
道 있는 이라야 소리 알기를 손바닥 보듯 하여
귀중하게 여기나니 이름하여 孤寂吟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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