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마당에는 옛날부터 익숙한 길을 찾아 간다 - 백장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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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현사 작성일17-04-30 21:34 조회27,3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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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장스님께서 2017년 2월 8일, 선방모임방에 올려 주신 백장선사 문답입니다.
공부는 때 묻은 옷을 빠는 것과도 같은 것인데 ,
옷은 본래 있는 것이나 때는 밖에서 온 것이다.
유有무無 등 모든 소리와 형상은 기름 때와도 같은
것이니 아예 마음에 두지 말라.
보리수 아래 32상과 80종호는 형상에 속하고,
12분교分敎는 소리에 속한다. 그러니 이제 '있다'
'없다'와 모든 '소리 형상 빛깔'의 흐름을 끊고
마음을 허공같이 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하기를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해야 할
것이다.
죽는 마당에는 옛날부터 익숙했던 길을 찾아 간다
해도 오히려 끝까지 가지 못하는데, 그때 가서 새로
조복하여 공부한다면 기약이 없다.
죽는 순간에는 좋은 경계가 한꺼번에 나타나는데
마음으로 더 좋아하는 곳을 먼저 받게 된다.
지금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도 나쁜 경계
가 없고, 설사 나쁜 경계가 있다 해도 좋은 경계로
변한다.
죽는 순간의 당혹함이 두렵다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유로워야 비로소 옳다.
낱낱의 경계와 법에 아무런 애욕과 물들음이 없다
해도 그렇다는 생각에 머물지 말아야 자유인이다.
지금은 인因이고 죽음은 과果인데 果業, 즉 결과의
업이 나타나면 어째서 두려워 하는가.
옛과 지금이 달라짐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옛에도 지금이 있고, 지금 역시 옛이
있다. 그러니 옛날에 부처가 있었다면 지금도 부처가 당연히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지금 자유를 얻는다면 미래세상까지 자유로
울 것이다.
생각 생각이 있음 없음 등의 모든 법에 매이지 않는
다면, 예나 지금이나 부처가 사람이고 사람이 부처
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삼매三昧요 정定이기도
하니, 定을 가지고 定에 들 필요도 없고, 禪을 가지
고 禪을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을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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