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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祖師禪)의 우수함을 외치다 - 범일국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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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흰구름 작성일17-08-30 16:47 조회26,3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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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의 개산조 가운데 범일(梵日: 810~889) 국사는 사굴산문을 열어 그의 독특한 선관(禪觀)을 내세웠다. 그는 특히 진정한 깨달음은 조사선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용모를 지녔던 범일은 부처님의 상호 가운데 하나인 정상육계상이 있었다 한다. 15세에 출가할 뜻을 자지고 절에 와 20세에 비구계를 받았다. 

 

흥덕왕 6년(831년) 당나라 유학의 원을 세우고 기회를 엿보던 중, 마침 왕자 김의종(金義琮)이 배를 타고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적에 그 배를 타고 함께 당나라로 들어갔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지식을 참방하던 중 염관제안(鹽官濟安)선사를 친견하였다. 염관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동국 신라에서 왔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로 왔는가? 육지로 걸어왔는가?” 

“바다도 건너지 않고 또한 육지도 밟지 않고 왔습니다.” 

“두 길을 다 밟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해와 달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데 발로 밟지 않으나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문답을 하고나서 염관이 범일을 동방의 보살이라고 칭찬하였다. 범일이 또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도를 이루어 부처될 수가 있습니까?” 

“도란 닦을 것이 없는 것이니 다만 자성(自性)이 오염되지 않게 하고 부처라는 견해나 보살이라는 견해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평상심이 곧 도이다.”

이 말에 범일은 다시 크게 깨우치고 염관의 문하에서 6년을 정진하였다. 

 

그 후 또 다시 제방을 순력하다 약산유엄(藥山惟儼) 선사를 찾아갔다. 유엄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강서의 마조 스님 회상에서 왔습니다.” 

“무엇 하러 왔는가?” 

“스님을 친견하고자 왔습니다.” 

“여기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찾아왔는가?” 

“스님께서 다시 일보를 전진하시면 되지만 저는 화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약산도 범일을 칭찬하였다.

마침 당 무종(武宗)이 파불(破佛)을 저지른 회창사태(會昌沙汰:884년)가 일어나 한 동안 피신을 하면서 산속에 숨어 선정을 닦았다.

 

그 후 소주(韶州)로 가서 육조혜능의 탑을 참배했는데 학이 와서 울고 하늘에 오색의 서운(瑞雲)이 나타났다고 한다.

문성왕 9년(847년)에 신라로 귀국하였다. 

명주(溟洲) 도독(都督)의 청에 의해 굴산사로 가 40년을 조사 선법을 진작하였다.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의 세 왕으로부터 존숭을 받았고 887년에는 진성여왕이 어례(御禮)를 갖추어 국사로 모시려 했으나 끝내 국사자리에 나아가지 않았다.

범일의 법을 이은 대표적인 제자에는 개청(開淸), 행적(行寂) 등 10대 제자가 있었다. 

 

이리하여 사굴산파가 흥성하여 보조국사 지눌스님에게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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